<중국,중국인>전지전능한 뛰어난 인재는 없어요 시대가 필요한 사람이 있을뿐이죠
<중국,중국인>전지전능한 뛰어난 인재는 없어요 시대가 필요한 사람이 있을뿐이죠
  • 한인희
  • 승인 2010.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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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빠링허우(80後)’의 대표 작가, 한한(韓寒) <하>

한한은 현대 중국 젊은이를 이해하는 하나의 기준이다. 그의 언행을 통해서 그의 의식구조를 이해해보자. 어떻게 해서 어린 나이부터 그렇게 대단한 글들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을까? 세상의 문제들을 어떻게 보고, 판단하고 있는가? 이른바 ‘소황제’로 성장한 이들이 향후 중국을 이끄는 과정에서 하나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
그는 “진리란 때로 몇몇 사람들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다. 그러나 소수 사람들은 결국 다수에게 반드시 복종 당하고 만다. 진리가 최고정점에 이르게 되어도 진리는 여전히 다수의 수중에 있다.
이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렇게 축적해준 것이다. 처음 한 사람이 어떤 말을 하면 두 번째 사람은 이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이 마침내 같은 목소리를 내게 된다. 만약 이때 이 말을 들은 세 번째 사람이 이런 사실에 대해 반대 의견을 제시한다고 치자.
그러면 이러한 사실을 네 번째 사람이 보면 한쪽은 두 사람이고, 한쪽은 한 사람이다. 결국 두 사람이 주장하는 쪽으로 손을 들어 주게 된다. 이렇게 보면 많은 사람이 주장하는 이야기라고 해서 반드시 자신과 같은 생각이라고 할 수 없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쪽으로 기울게 된다.” 이처럼 그는 세상의 옳고 그름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서 주로 다수가 진리를 윽박지르는 상황이 나타나는 점을 지적한다. 소수의 의견이 진리인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사람이 우리 시대에 제대로 된 인재란 말인가? 한한은 이 시대의 인재에 대해 매우 재미있는 비유로 설명한다. “만약 현재 이 시대에 ‘완벽한 인재[全才]’가 나올 수 있는 시험을 칠 수 있다면 이는 우리 교육에 있어서 하나의 행운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재의 출현은 시대적인 축면에서 보면 불행이다.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이는 이른바 ‘사람 중에서도 왕이다[人中之王].’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세상에는 그런 일이 절대로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全’이라는 글자를 한번 살펴보자. 이 글자의 아래에 있는 ‘王’자를 떼어 버려야만 한다. 그러면 오로지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한 ‘사람(人)’이 있을 뿐이다.” 사람이 중요한 것이지 전지전능한 뛰어난 인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다. 
교육과 관련한 그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자 그는 “현재의 교육문제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는’ 깨끗하게 목욕할 수 있는 것처럼 시원하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너무도 많은 사람이 마치 두툼한 솜옷을 입은 채로 목욕을 하고 있으니 문제다” 이는 교육 문제가 진정으로 해결해야 될 문제는 남겨두고 겉으로 보이는 문제에만 매달려 마치 옷을 입고 목욕을 하는 꼴이라고 조롱하고 있다.
특히 그는 중국의 교육이 학생들의 개성을 죽이는 점에 대해 강력하게 비난하면서 이렇게 비유한다. 즉 “만약 내가 수학, 어문, 영어 모두를 잘하고 음악, 체육, 컴퓨터는 빵점이고 기계를 만질 줄 몰라도 나는 여전히 우등생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음악, 체육, 컴퓨터 분야에서는 날고 기면서 포르투갈어를 모국어처럼 한다고 해도 수학, 어문, 영어가 낙제면 나는 열등생이다” 중국 교육이 학생들의 개성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입시위주의 융통성이 없고 단편적인 지식만을 추구한다는 점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나는 학교를 다닐 때 축구를 좋아했다. 어떤 친구가 이런 나를 비꼬면서 그렇게 공을 차도 국가대표 팀에도 못 들어가고 호날두보다도 못 차는데 축구해서 뭐하냐고 하면서 축구를 못하게 했다. 그렇다면 만약 당신이 운전하길 좋아한다면 당신에게 말하지만 당신 운전이 브루스 맥라렌(Bruce McLaren:카레이서)에 못 미치거나 더 빨리 달리려면 미하엘 슈마허(Michael Schumacher:세계적인 유명한 카레이서)를 이기지 못한다면 왜 운전을 하느냐고 비난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면허증을 몰수해야지!” 이렇듯 중국교육이 갖고 있는 문제를 치기어린 비유로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일견 옳은 이야기다.
그는 특히 중국 교육이 학생들의 창조력을 말살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어문을 잘하는 ‘비결’이 두 가지다. 하나는 어문 책을 보지 않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작문 책을 보지 않는 것이다.” 기존의 지나친 틀에 박힌 교육을 비난하면서 “내가 독서를 할 때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다. 나는 어문책과 작문수업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이처럼 돈을 벌려고 하거나 개성과 창조력을 죽이는 이러한 책들에게 분노를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작가 왕수(王朔:중국의 작가로 풍자의 대가이다)를 너무 좋아한다. 이 친구가 너무도 총명하고 더욱이 너무도 진실하기 때문이다. 나의 글쓰기의 특징은 첸종수(錢鍾書)의 <웨이청(圍城)>처럼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의 사람을 비난해도 깊이가 있고 한편으로 노골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중국 교육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부당한 일에 대한 기억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어느 해 학교에서 학비를 납부하는데 100위안을 강제로 징수했다. 이유는 이 돈을 잠시 부모님께 빌리는 돈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돈을 교육건설에 사용할 것이며 곧 돌려줄 것이라고 했는데, 언제 돌려주겠다는 지 기한도 없었고 이자도 주지 않았다. 결국은 돈을 빌려간 사람이 누구인지도 몰랐고 이 돈이 어느 건설에 썼는지도 아무도 몰랐다.” 이처럼 교육 비리를 고발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중국인들의 습성을 비난하는 모습에서 한창 때의 루쉰을 연상하게 된다. 그는 “중국인들은 큰 소리로 말하는 사람들을 얕잡아 본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큰소리로 말하는 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마치 중국 고대의 부녀자들이 전족을 한 ‘작은 발’에 비유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정상적인 발을 봐도 ‘큰 발’이라고 깔본다. 마찬가지로 중국인들의 말하는 습관이 ‘소리 죽여 말’하는 것이 습관이 되면, 정상적인 말을 하는 것을 보게 되면 당연히 ‘목소리 크다’고 비난한다. 목소리 크게 하는 친구들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은 이렇게 겁주었던 결과이고 큰소리로 자기 주장을 못한 것이 결국은 아예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는 어린 나이에 유명세를 타고 난 뒤에 우려를 하는 점도 보이고 있다. 따라서 그는 “명성이란 뒤통수의 머리칼 같다. 본인은 보이지 않지만 방관자들은 일목요연하게 잘 보인다”라고 경계하면서 궁극적으로 “(한 시대의)조류라고 하는 것은 오로지 기다리는 것이지 쫓아가는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과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조용히 역에서 기다리면 결국은 기차가 온다. (다만) 차가 막 떠났다면 우리처럼 평범한 친구들은 떠난 기차를 따라갈 수 없다”고 조류의 허망함을 지적했다. 그는 “나의 소설의 주인공은 기본적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바로 그럭저럭 빈둥거리면서 보낸다. 이것이 바로 생활이다. 왜 반드시 누구나 수준 높은 생활을 영위해야만 하는가?” 이러한 소설을 통해 인간 존재의 의미를 더욱 강조했다.
따라서 “내 자신의 개성을 개괄하기가 매우 어렵다. 나는 형식화된 인격에 대해 특별히 반감을 갖고 있다. 나는 다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뿐이다. 나는 큰 주류가 되어 흘러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아 우리들의 영광된 대교여!’라는 식의 형식과 틀에 박힌 글을 쓸 수가 없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한한은 자신만의 세계의 눈으로 중국의 현실을 평가함으로써 1980년 이후에 태어난 ‘빠링허우’의 내면적 갈등을 풀어낸 탁월한 작가임에는 틀림이 없다. 일회적이고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작가가 아니라 시대를 대표하고 중국의 현상을 제대로 풀어낼 수 있는 작가로 성장할 것이 분명하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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