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중국인>공교육의 이단아 ‘한한’ 중국은 왜 열광하는가?
<중국,중국인>공교육의 이단아 ‘한한’ 중국은 왜 열광하는가?
  • 한인희
  • 승인 2010.1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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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빠링허우(80後)’의 대표 작가, 한한(韓寒)


한한의 이름 앞에는 적어도 5개의 직함이 붙는다. 작가, 카레이서, 가수, 유명 블로그 운영자, 잡지편집장, 작곡가 등이다.
그는 금년 4월 미국의 <뉴스위크>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오른 인물이다. 특히 중국인들은 개혁개방 이후에 출생한 세대를 ‘80後’라 부르는데 그를 이 ‘빠링허우’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의 등장은 하나의 쇼크였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많은 이들의 관심거리고 그의 글은 영향력이 심대하다.
그는 1982년 9월 23일 중국 상하이의 진산(金山)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그의 아버지 한렌쥔(韓仁均)이 자기의 ‘득의의 필명’을 하나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한한(韓寒)이었다. 그러다가 사용하지 못하고 있던 중에 한한을 임신하게 됐다. 그가 배가 속에 있을 때 한렌쥔은 자신의 필명을 아들이든 딸이든 자식이 태어나면 이름으로 주려고 결심한다. 결국 한한이 태어났고 그리해 이 이름을 얻게 됐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이름이 춥다는 의미의 한(寒)은 날씨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가 사회로부터 크게 주목을 받게 된 것은 그의 글 솜씨가 한 몫 했다. 그는 일찍부터 글도 잘 쓰고 운동도 잘했다. 어린 중학생 때부터 남들과 다른 주목받는 글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는 운동 때문에 특기생으로 상하이 쑹지앙얼중(松江二中)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인 1999년에 <컵 속에서 훔쳐보는 사람(杯中窺人)>이라는 글로 제1회 ‘신개념 글쓰기 콘테스트’에서 1등상을 수상했다. 이 대회는 젊은이들에게 영향력이 큰 문학잡지 <멍야(萌芽)>가 주최한 전국적인 글쓰기 대회였다. 대회의 이념은 세 가지였다. 먼저 ‘새로운 사유’를 하자는 것이다. 즉 젊은이들에게 창조성을 강조하고, 과거 관념을 버리고 과거 규범에서 탈피해 어느 곳으로부터도 구속됨이 없음을 제창하고 나섰다. 그 다음으로 ‘새로운 표현’으로 주제에 구속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제에도 제한이 없기 때문에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적인 언어로 글을 쓰자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서 상투적인 표현에 반대하며, 천편일률적인 표현도 거부했다. 그리고 ‘자신만의 진실한 체험’ 즉 진실하고, 명료하게 자신의 느낌과 체험을 쓰자는 것을 모토로 젊은이들의 글을 모아 시상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말하는 ‘신개념’이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 말은 곧 한한을 이해하는 키워드이다. 중국 여론은 1997년 말부터 시작해 고등학교 어문교육에 대해 집중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1998년 젊은 학생들을 주요 독자로 하는 문학잡지 <멍야(萌芽)>가 ‘(중국)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특집기사를 내보냈다. 그 내용은 현재 중국의 고등학교 어문교육이 커다란 위기에 봉착했다고 진단했다. 다시 말해서 젊은이들의 생각과 시대적인 요구와 거리가 멀다는 의미다.
한한은 상을 받고 난 뒤 기말시험에서 7과목이나 과락이 되면서 유급을 당하고 말았다. 이에 대한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자 그는 사회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됐다.
과연 학교 교육은 어떤 인재를 키워내야 하는가? 등 일련의 격렬한 찬반 논쟁이 불붙었다. 그는 이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일생을 바꿔놓은 첫 번째 소설을 발표한다. 그가 경험한 상하이의 중학교 3학년의 이야기를 17살의 고등학생의 눈으로 고발했다. 소설의 제목은 <삼중문(三重門:한국에서는 박명애 역, 랜덤하우스코리아, 2008로 출판됐다>이다. 책이 출판되자 중국은 열광했다.
최근 20년 동안 최고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200만 부가 팔렸다. 더욱이 <포브스>선정 중국 최고의 인기작가인 루쉰, 모옌을 뛰어 넘는 책이라고 평가받기도 했다. 책의 내용은 정부의 교육정책으로 인해 인성이 말살된 중국 현대 교육체제에 대한 강렬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다. 유급을 당한 뒤 다시 과락을 하자 결국 퇴학을 당하고 말았다. 결국 한한의 학력은 고등학교 중퇴다.
퇴학 뒤에도 그는 계속 글을 발표했다. 산문집 <영하1도>, <통고(通稿)2003>,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가는 거야?>, <잡스런 글> 등을 집필했다. 소설은 <삼중문>, <소년처럼 팍 날아라>, <장안란(長安亂)>, <성의 연못(一座城池)>, <영광스런 날(光榮日)>, <그의 나라(他的國)>와 <1988년-세상과의 대화> 등의 작품들이 있다. 그는 현재 카레이서로 활동하면서 저술활동은 크게 줄었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의 블로그에 사회문제에 대한 의견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 그가 블로그에 발표하는 글이 사회적으로 큰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영향력이 크다는 의미이다.
2005년 2월에는 중국 소년 작가 지에항[解航:그는 인터넷 이름이 북방눈사람(北方雪人)으로 ‘시나닷컴’에서 가장 환영받는 작가로 1983년생으로 현재 뉴질랜드 오클랜드 UNITEC국립대학의 영화학원에서 영화감독 공부를 하고 있음]의 작품인 <생리통(痛經)>의 시나리오가 만들어지고 중국 북방지역에서 촬영할 계획이 잡히면서 영화의 주인공의 이미지가 한한과 딱맞아 떨어진다고 교섭했으나 그가 거절하는 바람에 아쉬움을 갖게 했다.
한한은 음악 작곡에도 재능을 보이고 있다. 2006년 9월 말에 개인 디스크를 발행했다. 노래 제목은 <18금>으로 그 중에 모든 가사를 본인이 직접 썼다.
2010년 한한은 전자음악의 전문가 후꺼의 단편 <동물세계-함께 살고 있는 동물>에 우정 출연하기도 했다.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는 한한은 광고도 찍었는데, 컴퓨터회사 ASUS의 광고모델이 됐고, 또한 의류회사 VANCL의 광고모델이 됐다. 최근에는 자장커(賈樟柯) 감독의 영화 <해상전기(海上傳奇)>에도 출연했다.
한한은 개인의 감정생활을 공개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일찍이 언론들의 취재에서 자신의 여자 친구가 있었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갑자기 2010년 5월 3일 어느 매체가 한한이 이미 여자 친구 진리화(金麗華)와 결혼했고 임신했다고 보도했다. 그에 대한 관심도가 크다는 점을 반영하고 있다.
그는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시나닷컴에 운영하고 있는 그의 블로그의 방문자 수가 시나닷컴 전체에서 6위 정도로 2010년 12월 18일까지의 기록을 보면 1초마다 방문자들이 들어오는데 현재까지 방문객 수는 440,404,734로 4억 명이 넘었다.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고 영향력도 크다. 그의 블로그에 가면 옆모습을 하고 졸고 있는 강아지가 보인다. 잔잔한 음악이 흐른다. 광동어 노래도 들린다. 그리고 붉은 글씨로 ‘공고’를 써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그 내용은 기본적으로 “토론회, 교류회, 싸인회 등에 참가를 하지 않는다. 또한 특강, 테이프컷팅, 패션쇼, 상장수여식 같은 겉치레 행사에 절대로 참가하지 않는다.
아주 드물게만 인터뷰를 하기도 한다. 원칙적으로 매체들과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 또한 약속하고 원고를 쓰지 않으며, 시나리오를 쓰지 않고, 연속극에 출연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책에 서문을 써주지 않는다.”라고 써 있다. 그의 삶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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