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중국인>中문화의 깊은 미학속에서 그를 만난다
<중국,중국인>中문화의 깊은 미학속에서 그를 만난다
  • 한인희
  • 승인 2010.12.13 00:00
  • icon 조회수 30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국 최고의 ‘여장남자 연기자’, 리위깡<하>

리위깡에게 있어 2009년은 매우 의미 있는 한 해였다. 이 해 초에 중국가극무극원의 국가 1급 연기자가 됐고 이를 바탕으로 해외에서 주목 받는 공연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 해 7월 28일 ‘태평성세의 아름다운 의상’이라는 주제로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에서 개인 공연을 갖게 됐다.
오페라하우스의 공연은 중국인으로서는 2002년 여자가수 쑹주잉이 공연을 한 이래 두 번째 일이었다. 이날 공연의 사회는 홍콩의 펑황(鳳凰)위성 TV의 여자 MC 쉬꺼후가 맡았고, 남자 MC는 호주의 Breen 무용단의 토마스가 맡아서 진행했다. 수꺼후이는 “리위깡의 공연은 너무도 완벽했다. 처음으로 이런 공연에 사회를 보았지만 그의  <신귀비취주>를 보았을 때 막후에서 갑자기 메이란팡 선생이 떠올랐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그동안 중국문화의 해와 전파의 공로를 인정받아 ‘남십자다원문화공헌골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외국인들에게 중국문화의 화려함과 다양함을 알리는데 크게 공헌했다는 점을 평가받았던 것이다.
한편 그는 지난 8월 29일부터 29일 동안 일본의 도쿄예술극장에서 <경화수월(鏡花水月)>이라 주제의 공연을 가졌다. 리위깡은 두리낭(杜麗娘:명대 탕쉐엔주(湯顯祖)의 <무단딩(牡丹亭)>의 여자 주인공으로 중국 고전 희극 중에서 가장 귀여운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인물이다)으로 분장을 하고 무대에 등장하자 관중들이 탄성을 질렀다. 곧 이어 당나라 양귀비의 이미지로 무대에 등장하자 더욱 크게 환호했고, 리위깡이 가늘고 긴 저음으로 노래를 부르자 일본 관중들은 중국문화의 깊은 미학의 경지에 빠져들게 됐다. 이 공연에는 일본의 국보급 연기자인 반도 다마사부로(坂東玉三郞)가 참관했다. 그는 일본에서 ‘일본의 메이란팡’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공연계의 거물이다. 공연이 끝난 뒤 직접 무대로 올라와 리위깡을 접견하고 그의 성공적인 공연을 축하해주었다.
그렇다면 리위깡이 등장은 운인가 아니면 실력인가? 많은 이들이 리위깡에 대해 뒷말이 분분하다. 왜냐하면 그의 성취가 너무도 갑작스러운 점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그는 “이것은 모두 나의 능력과 실력으로 된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하면서 “특히 국립극단에 입단하는 일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자부심이 대단하며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한 사람의 연기자에 대한 입단을 결정할 때 한 두 사람이 마음대로 결정한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만큼 의견이 분분했던 것은 그의 성취가 중국 전통 공연계에서는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그는 결론적으로 “순수한 아마추어(중국에서는 ‘業餘’라 한다)에서 출발해 경쟁프로그램을 통해 선발된 연기자가 국가급, 특히 전업의 극단에 진입한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전업의 대학에서 이 분야를 전공하고 열심히 공부한 연기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만약 그가 전문적인 극단 혹은 국립극단에 입단한다는 것은 어려운 여러 차례의 테스트를 거쳐야하는 과정이 있다.
매우 어렵고 힘든 과정이다. 중국에서 극립 극단에 진입한다는 것은 문화부, 예술계의 원로들이 모두  인정하는 중국의 전통예술에 대한 능력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분들이 바라는대로 나는 온 몸으로 이러한 좋은 작품을 표현해 내는 것이다. 그리해 중국 전통예술과 전통문화를 충분히 확립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리위깡은 어릴 때부터『홍루몽』의 주인공 린따이위(林黛玉)을 좋아했다. 특히 그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그윽하고 원망스런 눈빛을 좋아했다. 그리해 그는 만약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얻는다면 바로 이런 사람을 얻어야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여자 친구, 판샤오닌(范小寧)은 오히려 매우 현대적인 스타일이다.
절대로 중국의 고전적인 미인이 아니다. 리위깡과 판샤오닝은 함께 공연을 하다 한 눈에 반해 사랑에 빠져들었다. 판샤오닝은 중국 최초의 여자 색스폰 연주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녀는 음악가 집안 출신으로 그의 숙부가 바로 유명한 색스폰 연주자 판성치(范聖琦)다. 리위깡은 ‘싱꽝따다오’ 프로그램 년말 결선무대에서 리위깡은 자신의 여자 친구를 데리고 무대에 섰다. 두 사람은 함께 (롱화<绒花>:1979년 제작된 영화 <샤오화(小花)>에 삽입된 곡 중 하나로 서정적인 민가풍의 애절한 곡이다. 이 영화에서는 샤오화로 대표되는 농촌 소녀가 혁명시대에 희생과 봉사정신을 그린 작품이다)를 노래하고 연주했다. 매우 성공적이었고 3등에 입상했다.
리위깡은 자기의 여자 친구를 이야기하면서 “그녀는 나의 좋은 스승이자 친구이다. 그녀는 음악에 매우 집착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음악가와 문학과 예술가 집안 출신이다. 그래서 그녀기 예술분야에서 나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녀는 베이징 출신이고 나는 동북의 시골에서 자랐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 분야에 대해 배운 것이 별로 없다. 오로지 부모님의 입에서 전해오는 노래 일부 지방의 ‘얼렌쭈안(二人轉)’의 몇 곡만을 배웠을 뿐이다. 음악에 대해서 그녀는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리위깡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신귀비취주(新貴妃醉酒)>와 <경화수월(鏡花水月)>가 있다. 다가오는 2011년 1월 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경화수월(鏡花水月)>을 공연할 예정이다. 그의 <신귀비취주(新貴妃醉酒)>는 2008년 제17회 중국금계백화영화제에서 배경음악상을 받기도 했다. 
그가 중국인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비록 유명인이지만 낮은 곳을 잘 살피고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 대해 마음을 깊이 쓴다는 점이다.
그는 유명해지기 이전부터인 1999년부터 중국의 가난한 산간지역의 공부할 기회를 잃어버린 고아와 과부 노인들을 정성껏 도와주고 있다. 그는 “제가 능력이 되는 한 그들을 돕겠다고”고 말하곤 한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집에는 칼라TV도 없으면서 남을 도와주기도 했다. 또한 그는 계속해 그는 자신의 본명인  리깡의 이름으로 일부 가난한 대학생들을 도와주고 있다. 그 가운데는 칭화대학의 8년차 석박사 학생들 돕기도 했다. 그는 장래에 능력이 있다면 농촌 지역에 ‘강사소학’이라는 이름의 희망소학교를 건립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2008년 원촨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개인 명의로 헌금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그는 재난이 있을 때마다 성금을 납부하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그는 자수성가한 연예인이다. 오로지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노력하고 겸손한 중국 문화를 계승발전 시키는 예술가이다. 그의 발전이 어디까지인지 계속 지켜볼 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