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현 장편소설]태양의 밀서<202>
[김자현 장편소설]태양의 밀서<202>
  • 현대일보
  • 승인 2010.09.14 00:00
  • icon 조회수 3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장 자유는 구속으로부터 - 19. 부활의 날개
‘하지만 선장님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나처럼 이런 방에서 물음질 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먹고 난 국밥 그릇을 챙겨서 한 구석에 밀어넣은 수사관이 다시 책상에 앉았다.
“다시 해봅시다. 누가 이기나. 당신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나를 이기려면 뭔가 먹으며 버텨야지. 지금이라도 말해요. 다시 시켜줄께!”
뽀얀 얼굴에 새우젓 같이 눈을 만들어 뜨며 수사관이 수옥의 답변을 재촉했다.
“십오 년 전 어디서 전진수와 접선 했소? 그리고 접선한 내용을 말해요.”
“.........”
“이럴 겁니까? 내가 지금 아주 부드러운 사람으로 보이지? 나도 승질 더럽기로 이 골짜기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야! 당신 같은 것 귀신같이 잡아갈 수도 있고… 어서 말해!”
“그래서가 아니라, 말하갔시요. 내가 당시를 말하디 않으문 전진수씨가 북과 래통한 사람으로 되니까 할 수 없이요…”
한참을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은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는 변절한 고정간첩 때문에 접선에 실패하고 도주하는 중이라고 했습매다. 우리는 그 날 바로 몸을 합쳤시오. 나는 중국 산판으로 남편이 몸을 팔러 가서 시부모와 살고 있뎄시오. 아이도 없고 말하자면 신접살이에 남편이 가고 보니 시아버지는 밤이면 이상하게 나오고 해서 샘이 있는 산으로 피신했다가 그를 만났시오. 삼일 후에 평양에서 큰 임무가 있다고 했습매다. 그리고 가고 나서는 지금까지 십오 년을 못만났슴매. 그리고 나서 그 때, 우리 동리는 공작원 거점기지가 될 수 있다고 그 마을 전체가 아오지 탄광 쪽으로 리주 명령이 떨어졌슴매. 수색대가 강변에서 오리발을 발견했다고 했시오. 나는 임신을 했슴매. 다행히 남편이 떠난 지 두 달이 넘디 않았을 때라 난 의심을 받지 않았슴매! 유월십삼일탄전에서의 생활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슴매다.”
입이 마르는지 그녀는 자신 앞에 놓여있는 물로 입술을 축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시 흑룡강에 사는 오라바니가 여러 해 전부터 초청장이 왔시오. 아오지에서는 좀처럼 사람을 놔주디 않더니 간나아들이 매일 죽어나갔습매다. 그러구선 열두해가 지난 어느 날 퇴소해도 좋다는 명령이 떨어졌시오. 그래 흑룡강으로 갔는데 삼 년이 디나도 독립을 못하자 올케가 하도 매섭게 나왔슴매다. 그래 오라바니가 저를 밀항이라도 시켜서 남한으로 갈 수 있도록 하는 모양이었슴매다. 그리고 5월 20일경 스다오 갑으로 왔습매다. 그리고 하룻밤을 부두 근처에서 잤시오. 그리고 철강을 싣고 가는 야화선에 저를 태워주고 오라바니는 갔슴매다. 이거이 다 입매다. 십오 년 만에 전진수 선장을 만났시오. 이것은 기적이디요!”
그날의 감격이 다시 살아오는지 그녀가 흐느껴 울었다.
“나는 디금 죽어도 여한 없시오. 그렇디만 우리 에미나이가 이제 제 아바이를 만났는데 그 아바이가 우리 때문에 간첩으로 오해를 받는다면 가슴 아프디 않겠슴매까? 이거이 우리 이야기 다 입매다. 이를 받아주시디 않갔으면 저는 자결을 하고 말갔시오.”
유승재가 처음 신성조에게 팩스를 보내던 날로부터 다음다음날 통영경찰서 앞에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시민단체, <살림이연대> 회원들과 또한 그들과 연대한 <민주변호사연대>와 <인권참여사랑방> 등의 회원들이 대대적으로 피켓을 들고 농성에 들어갔다. 본 부에서 파견 나온 수장을 비롯하여 부산과 마산은 말할 것도 없이 해남 등지에서도 이들의 구명을 위해 시민단체 행동대원들이 발을 벗고 나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