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현 장편소설] 태양의 밀서 <192>
[김자현 장편소설] 태양의 밀서 <192>
  • 현대일보
  • 승인 2010.08.26 00:00
  • icon 조회수 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장 자유는 구속으로부터 - 17. 빛을 향하여
완도항에 도착한 청산호에서 내려 냉동탑차 두 대에 나누어 실린 밀항자들은 어딘지 모르는 밤길을 전속력으로 달렸다. 늦은 밤이라 길은 뻥 뚫리고 거추장스러운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도착지는 완도항에서 2시간쯤 떨어진 수산물 대형창고니까 발각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밀항자들의 뒷수습은 이미 완벽하게 짜여져 있다. 조직은 인력시장과도 끈이 닿아 강포동이 뒷일은 알아서 잘 할 것이다. 청산호 선장 노모의 급사로 밀항자 인도가 하루 늦어졌지만 추한일은 큼직한 돈자루를 거머 쥘 자신의 팔을 쓸며 트럭 기사 조수석에 앉아 검문소 초병이 후래쉬를 들고 있는 최초의 검문소에 도착했다. 추한일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조수석에서 내렸다. 시각은 새벽 1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수고하십니다. 완도항 파출소 김순경입니다.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대답을 빨리 하지 못하는 젊은 운전기사 앞으로 추한일이 얼른 나섰다.
“격무에 수고하십니다. 완도항에서 오지라, 어디서 오기는요. 이 문디 자슥이 시간이 늦다 보이 잠이 쏟아져 가지고… 아~정신 좀 차리랑께!”
추한일이 말을 하는 사이 순경도 두어 번 하품을 했다.
“뒤에 실린 내용물이 뭡니까?”
“돼지요, 돼지.”
“돼지요? 완도항에서 온다면서 돼지를? 냉동탑차에 돼지를 실어요?”
“아니요. 야가 야가… 쯔쯧! 시방 돼지괴기를 가꼬 돼지라고 말하문 된당가!”
기사를 향해 호되게 소리치는 추한일을 바라보던 순경은 다시 기사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럼 냉동탑차 열어보지 않아도 되는 거죠? 기사님!!”
“예, 돼지고기 맞습니다.”
잠깐 눈을 붙이다 나왔는지 순경은 다시 하품을 하면서 바리케이트를 치우고 빨간 불이 번쩍이는 경찰봉으로 통과신호를 보냈다. 다시 조수석으로 올라서는 추한일이 이마에 맺히기 시작하는 땀을 팔꿈치로 닦을 때 냉동차 안에서 귀를 세우고 있던 밀항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땅이 꺼져라 안도의 숨을 쏟아냈다. 이제 바다에서 빠져나왔으니 목숨이 위태로운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이제 밀항은 성공이다.’고 맘을 놔도 되는 것일까? 납처럼 무거운 가슴을 안고 청산호를 탔던 사람들의 가슴으로 희망이란 빛이 점차 새어들기 시작했다. 일자리도 이미 정해졌다니 정말일까? 처음에 계약대로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희망 쪽에 점괴를 놓고 나자 자포자기에 실신한 듯 늘어져 있던 사람들은 조급증으로 시달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고 사방에서 이들이 폭폭거리고 내쉬는 한숨소리로 엔진에 힘을 가한 냉동차는 한 시간 여를 넘게 달렸다. 어딘가 방지턱으로 들어서는지 울렁하면서 덜컥 올라선 냉동차가 넓게 한 바퀴 돌더니 드디어 우뚝 섰다. 그리고 엔진음이 꺼졌다. 사람들의 움켜쥔 주먹에는 땀이 흥건히 고여있었다. 그리고도 냉동차는 열리지 않았다. 수군거리는 말소리, 그리고 대여섯은 되는 것 같은 사람들의 발소리들이 분주히 나고 나서 대형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나서 철커덕 냉동차가 열렸다. 갯내음이 물씬 코로 들어왔다. 그리고 거기 처음 보는 것 같은 푸르게 깔린 새벽빛 속에 양쪽에 3명씩의 장정이 열린 입구를 향해 사람 골목을 만들고 서 있었다.
“동작 빨리 한다. 저 보이는 문으로 뛰어들어간다.”
소리를 크게 내면서 열리던 문이 저것이로군! 냉동탑차와 비교한다면 운동장만큼 넓은 창고가 그들을 담기 위해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 홈빡 땀에 젖은 사람들이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