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교육에 대한 비전을 다시 수립하자 ②
[기고]교육에 대한 비전을 다시 수립하자 ②
  • 김성우
  • 승인 2010.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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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박사·상지대 겸임교수·兀人논술연구 소장

교육이란 우리 사회의 미래를 담당할 어린 인재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고 어떤 방향으로 키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활동이다.
현재 우리 교육이 표류하고 있는 이유는 교육 활동에서 ‘무언가’에 해당하는 교과과정과 ‘어떤 방향’에 해당하는 비전이 명확치 않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서양의 교육을 정립했다면, 공자는 동양의 교육을 정립했다.
공자의 말씀을 모음집인 ‘논어’의 첫머리가 바로 학습에 관한 것이다. “배워 때에 맞추어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이전에 존재하던 귀족의 자제만을 가르치던 관학이 몰락한 후, 공자는 자신의 집에 은행나무를 심고, 그 아래에서 배움의 문을 열어 누구나가 자발적으로 공부하기를 원하면 배울 수 있도록 했다.
공자의 출신은 70살이 넘은 몰락한 늙은 무사와 17세밖에 안 된 무당집 셋째 딸이 만나 정식결혼이 아니하고 낳은 아이였다. 3살만에 아버지를 여읜 그의 삶은 그 시작이 미천했다.   그러나 그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고 자신만큼 호학(배우기를 좋아함)하는 자는 없을 거라고 자부심을 지닐 만큼, 특정한 스승에 구애받지 않고 두루 찾아다니며 열심히 배워 30살에 이미 자신의 나라에서 그 명성을 날리게 된다.
이에 그치지 않고 공자는 새로운 교육의 내용과 비전을 정립했다(도올의 ‘논어한글역주’ 참조). 그 교육의 비전은 자신의 도덕성을 함양해 백성을 교화하는 정치적 리더인 ‘사(士)’가 되는 것이고, 그 교육의 내용은 육예(六藝: 예절, 음악, 활쏘기, 마차몰기, 서예, 산수)이다.
이를 위해 그가 끊임없이 물어 배운 것을 ‘사문(斯文)(유교경전)’으로 정리했다. 즉 그는 ‘시경’, ‘서경’, ‘역경(주역)’이라는 3경 이외에도 ‘예기’를 편찬하고, 역사서인 ‘춘추’를 지음으로써 유학이라는 동양의 새로운 인문주의의 전통을 창안하게 된다. 이로써 유가의 핵심 커리큘럼인 3경 또는 5경이 출현하게 된다.
이로써 미천한 소년이던 공자는 정치적 리더의 새로운 비전인 ‘사(士)’의 지도적 인물이 되고, 유학의 창시자가 되며, 공자 교단으로서의 유가라는 학파가 탄생하게 된다. 유가에서 말하는 붕(鵬)이란 바로 학문을 위해 뜻을 같이 하는 벗을 의미한다.
보통 유가의 핵심경전을 4서3경 또는 4서5경이라고 한다. 이는 공자의 원시유학 외에 신유학인 주자의 성리학에 의해 그 커리큘럼이 개편됐기 때문이다.
주자가 기존의 5경 체제에서 벗어나 4서(논어, 맹자, 대학, 중용)의 체계를 새로운 교육의 기본과정으로 내세우면서 4서는 1313년부터 1905년까지 중국의 관리 등용시험인 과거(科擧)에 공식 과목으로 사용된다.
이런 식으로 유학은 새로운 정치지도자인 선비의 비전과 그러한 인재상에 걸맞은 교육과정을 4서5경이라는 ‘사문’으로 제시함으로써 동양적 인문교육의 방향과 내용을 정립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전통적인 유교 교육에서 벗어나 근대화된 교육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 근대 교육시스템은 불행히도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 치하에서 도입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교육은 일제식 관치주의 또는 국가주의가 지배하게 된다. 교육의 국가주의는 민주화 이후에도 청와대와 교육과학기술부라는 기관이 중심이 돼 여전히 우리 사회의 교육 관행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 교육의 두 개의 중심기관은 플라톤이나 공자와는 다르게 우리의 인재상과 교과과정을 명확히 제시치 못하고, 수월성을 위한 영어몰입이나 사교육 배제를 위한 입학사정관제라는 이름으로 입시제도 손질에 정성을 다해 교육을 정치논리로써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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