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진정한 역할
스승의 진정한 역할
  • 현대일보
  • 승인 2024.03.25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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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 철
중앙대 명예교수

 

식당에서도 만나고, 다방에서도 만나고, 집에서도 만나고, 가평에 있는 그의 밤나무골 별장에서도 만났다. 

내가 대학원을 다니던 1960년대는 다방이 흔치 않았다. 더욱더 학생이 다방을 드나드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곽 교수가 나를 초대해서 서울역 근처의 다방(월계수)을 난생처음 가보았다. 내가 처음 다방을 가서 받은 인상은 교수나 문인 그리고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만남과 대화의 장소로 기억된다. 

곽 교수가 나를 다방에서 만나자고 한 것은 나의 논문(석사)에 관한 조언과 지도를 하기 위해서였다. 곽 교수는 ”자네는 학부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니 이와 관련된 논문을 쓰는 것이 어떠냐?“고 조언을 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논문을 ”언론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연구“에 관해 쓰기로 했다. 

곽 교수는 그러나 나의 논문이 생각보다 늦어지자 ”논문이 별거냐“ 하면서 내가 논문을 쓰도록 격려해 주었다. ”논문이 별거냐“ 하는 말은 논문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제때 쓰라는 말이었다. 나는 곽 교수를 통해 스승이란 제자에게 단순히 지식만을 전수하는 전달자가 아니라 제자가 학문과 관련해 할 일을 일깨워주고 하던 공부(학위)를 끝내도록 격려하고 도와주는 조언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리고 곽 교수와 식사에 관해 잊지 못할 일화가 있다. 한번은 학교 정문 앞 중국식 식당에서 곽 교수와 식사를 했다. 우리는 짜장면을 주문해 먹었다. 당시 짜장면은 수타면이어서 면이 쫄깃쫄깃해 맛이 있었다. 나는 검은 짜장은 남겨두고 흰 면만 골라 먹었다. 흰 면만 골라 먹는 것을 지켜보던 곽 교수는 ”자네 진짜는 안먹고, 가짜만 먹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다. 이후부터 나는 검은 짜장도 먹기 시작했다. 

그후 나는 1974년 8월부터 1979년 8월까지 미국 미네소타 대학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그때 지도교수가 에드윈 에머리였다. 에머리는 모트에 이어 미국 저널리즘 역사의 대부였다. 에머리가 저술한 프레스 앤드 아메리카(The Press & America)는 미국 저널리즘 역사의 대표적인 교과서였다. 

그런데 나는 미네소타 대학의 저널리즘 대학원을 지원할 때, 대학원에 입학하면 무엇을 공부하기를 원하는가 하는 연구목적란에서 ”나는 미국 저널리즘의 역사를 공부할 것이라고 하면서, 프랭크 모트 (Frank Mott)의 저서인 아메리칸 저널리즘(American Journalism, 3rd ed., 1971)을 통독했다고 기술했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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