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두번째 전환기
인생의 두번째 전환기
  • 현대일보
  • 승인 2024.03.15 17:17
  • icon 조회수 1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상 철
중앙대 명예교수

 

대학신문 기자 3년 차인 1964년에는 한일국교 정상화(1965.6.22.)를 앞두고 대학마다 캠퍼스에서 이를 반대하는 데모가 격렬하게 일어났다. 

한국의 지성을 대표하는 함석헌 선생이 한일국교 정상회담 반대의 표시로 삭발을 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중앙대학 캠퍼스 내에서도 많은 학생들이 한일회담 결사반대를 외치면서 격렬한 데모를 별였다. 나는 취재상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중앙대학 설립자겸 총장인 임영신 박사는 캠퍼스 내에서 돌을 던지면서 저항하는 학생들을 향에 묵묵히 걸어가, 결국은 학생들을 캠퍼스 밖으로 쫓아내 해산시켰다. 이를 목격한 나는 ”전능하신 예수님의 대한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하고, 깨달았다. 

이때 마침 바로 옆집에 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신 현혜양 권사님을 따라 나간 것이 지금의 덕수교회였다. 

덕수교회는 1946년 최거덕 목사가 설립 해 1977년까지 시무했고 2대는 손인웅 목사가 취임해 2012년까지 시무했다. 2012년부터 지금까지는 3대인 김만준 목사가 시무하고 있다. 

나는 1964년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만나, 영접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순리대로 이루어졌다. 내 인생에서 1964년 예수님을 만난 다음으로 두 번 쩨 인생의 전환기(milestone)는 배우자와의 만남이었다. 내가 배우자를 만난 것은 미네소타 대학에서 5년간 유학을 하면서,  학위를 끝낼 무렵인 1979년 6월 경이었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배우자도 기독교인 이었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서울서 미네소타로 이민을 와 교회를 다니면서, 병원에서 전문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내가 배우자를 처음 만나게 된 경위는 이러했다. 나는 미네소타 언론대학원에 다니면서 그 대학 도서관에서 시간제로 일을 하면서 미국인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어느 날 폴(Paul)이란 미국인 친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그의 집에 가서 보니까, 폴의 배우자가 한국인 소정이었다. 그리고 소정의 옆에는 아주 단정하고 예쁘고 아름다운, 장차 나의 배우자가 될 여인인 해옥이 앉아 있었다. 해옥은 우리가 1979년 미네소타에서 결혼한 지 42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때 그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다. 나는 지금도 우리가 처음 만날 때를 연상하면 너무나 기쁘고 행복하다.  

나에게는 두 명의 멘토가 있다. 한 사람은 내가 중앙대학에서 석사과정을 공부할 때 나를 지도했던 곽복산 교수다. 그리도 또한 사람은 내가 미국 미네소타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공부할 때, 나를 지도 했던 에드윈 에머리(Edwin Emery) 교수다. 

과복산은 내가 한국 대학에서 공부를 하면서 만난 은사들 가운데 개인적으로 만나 가장 오랜 시간을 커피도 마시고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다음주에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