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수호의 날, 다시 새기는 55용사의 희생
서해수호의 날, 다시 새기는 55용사의 희생
  • 현대일보
  • 승인 2024.03.1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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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삼면이 바다인 지정학적인 여건 때문에 5,000여 년의 역사를 자부하면서도 늘 외세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서해는 지정학적인 이유, 정치적・경제적 이유 등 때문에 우리나라, 북한, 중국과의 충동 위험성이 상존하는 지역이다. 중국과는 중국 어선의 우리 해상에서의 불법조업 문제 등으로 항상 갈등과 충돌이 반복되고 있고, 북한과는 지금도 그 효력을 부인하고 있는 NLL과 같은 정치적・군사적인 이유로 위험이 상존하는 곳이다.

‘북방한계선(NLL:North Limit Line)’은 남북 간의 우발적 무력 충돌 발생을 줄이기 위해 서해 5개 도서(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와 북한 황해도 지역의 중간선을 기준으로 설정한 해상경계선이다. 북방한계선은 1953년 8월 30일 마크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에 의해 설정된 이후 남북한 간의 실질적인 해상경계선 역할을 해 왔으나 서해가 군사적 요충지가 되면서는 북방한계선의 무효를 주장하는 북한의 도발로 많은 격전이 치러진 곳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2002년은 월드컵의 해이기도 하지만 1999년 6월 11일 대승을 거둔 제1차 연평해전 이후, 북한이 다시 한번 북방한계선을 침범하여 무력 충돌을 일으킨 제2차 연평해전이 발생한 해이기도 하다. 2002년 6월 29일 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의 기습 사격에 대응하여 치열한 교전을 펼친 참수리 357정. 이날의 교전으로 장병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이후 2010년 3월 26일에는 백령도 근해를 초계 중이던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에 피격되어 침몰하며 장병 40명이 전사하고 6명이 실종되었으며, 실종된 장병들을 구조하기 위해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잠수에 나섰던 한주호 준위가 순직하였다. 그로부터 몇 개월 지나지 않은 2010년 11월 23일 북한은 다시금 연평도를 향하여 수백 발의 기습 포격을 가하였고 이로 인해 2명의 장병이 전사하고 16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2명의 민간인 사망자도 발생하였다. 누군가의 아빠, 아들, 가족이었던 소중한 생명이 나라와 국민을 위한 마음으로 국토를 지키다가 기습적인 북한의 위력 도발에 희생당한 것이다.

‘천하가 비록 평안하더라도,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태로워진다(天下雖安 忘戰必危)’. 춘추전국시대 전략・전술가 전양저의 말이다. 제나라의 장군이자 병법가였던 그는 전쟁을 준비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안위라는 평화적 수단을 치국평천하에 사용할 수 있음을 알았고 따라서 평화를 위해서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진리를 꿰뚫고 있었다. 이러한 지론을 바탕으로 전양저는 당시의 패국인 진나라를 제압하는 등의 공헌을 했다. 평화와 전쟁은 동시에 양립할 수 없는 대척적인 말이지만, 이 말의 이면에는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전쟁을 치를 각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평소에 전란을 대비하는 것의 중요성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이렇듯 서해에는 평화로운 바다를 지키기 위해 희생과 생명을 다한 우리의 호국영웅들이 있었다.

이러한 서해수호 55용사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기 위해 정부는 2016년부터 매년 3월 넷째  금요일을 ‘서해수호의 날’로 지정하여 기념하고 있으며, 올해는 3월 22일이 아홉 번째로 맞이하는 서해수호의 날이다. 우리국민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재의 평화가 결코 값없이 얻은 것이 아님을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제9회 서해수호의 날을 맞이하여 북한의 위력도발에 맞서 국민의 소중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고귀한 생명을 바쳐 서해에 잠든 55인 호국용사들의 희생의 역사적 교훈이 상기되고 어린 세대들에게도 전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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