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최고의 추억으로 남은 '탱고'
인생 최고의 추억으로 남은 '탱고'
  • 현대일보
  • 승인 2024.03.08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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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석 진
시인

 

필자는 작년 이맘때쯤 큰 용기를 갖고 잠시 탱고 배우기에 도전했었다. 서울 이수역과 사당역 중간쯤 되는 위치의 스무 평 남짓한 지하 댄스홀에서 여섯 달 정도의 수련만 가지고 탱고의 진수를 알았다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탱고가 어떤 춤이고 또 탱고가 추구하는 춤의 미학을 어느 정도는 파악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처음 유래된 춤답게 라틴 아메리카 특유의 열정 넘치는 춤 사위와 그동안 제대로 알지 못했던 탱고라는 음악의 본질을 알게 된 것은 큰 소득이었으며, 필자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사교 춤에 관한 오해에서 비롯된 인식의 변화는 돈 주고 살 수 없는 경험이었다. 

필자가 탱고에 빠졌던 것은 사실 춤보다는 탱고 음악이었다. 특히 뜨거운 사랑이 연상되는 2/4박자의 리듬과 이별의 우수어린 단조 음악의 마이너 코드는 압권이었다. 뱃사람들의 고독과 향수 그리고 젊은 연인들 사이의 사랑과 실연을 노래한 탱고 음악을 아르헨티나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뿌리 깊게 자리잡은 슬픔과 애환의 정신 세계라고 말하고 있다. 탱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에로틱한 유희를 한 꺼풀 벗겨 내면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가치관과 명예를 지켜내는 용기가 저변에 흐르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탱고 음악이 필자에게 특별히 가슴에 와닿았던 것은 알파치노(극 중에선 프랭크 역)가 열연했던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의 주제곡인 Por Una Cabeza(간발의 차이로)는 물론, 마치 카를로스 산타나의 기타 선율과 흡사한 '스페니쉬 콘넥션'의 'Melancolia De La Europe' 역시 재즈 음악에도 불구하고 가슴 뛰는 탱고의 선율 때문이었다. 탱고 음악을 떠올리면 대부분 아르헨티나의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를 연상하지만 '오스발도 푸글리에세'나 '줄리안 프라자', '에드가르토 도나토'와 같은 탱고 음악 거장들의 우수 짙은 음악들은 넘볼 수 없는 탱고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특별히 피아졸라의 대표적인 느린 탱고 음악인 '망각(Oblivion)'은 탱고에 열중하면서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똑같은 일상에서 필자의 은퇴 후의 고단한 삶과 상실감 모두 다 잊고 춤과 음악에 몰입했던 기억을 상징하는 듯 했고, 그렇게 경험했던 당시의 탱고 수업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던 것이다.

탱고를 배우면서 수업에 참여했던 일행들과 함께 홍대 앞의 탱고Bar 밀롱가를 갈 기회가 있었는데 평소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댄서들의 열정과 함께 절제된 춤의 혼을 느꼈으며 어찌 보면 그건 또 다른 카타르시스였다. 그 날 목격했던 능수능란하게 춤을 추던 댄서들에게서 상대방에 대한 예의 또한 매우 중요함을 깨달았다. 당시에 필자가 배웠던 것은 사실 탱고 춤의 가장 기초적인 단계이다. 그럼에도 당시에 익혔던 '육살리다(6salida), 팔살리다(8salida), 오초꼬르따도(Ocho Cortado), 오초(ocho)'로 이어지는 춤의 진행은 언제 어디서든 시연할 수 있을 정도로 몸에 익숙해져 탱고에 그만큼 흥미가 컸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당시 필자가 수업 내내 누구보다 열중했던 탱고 수업을 급하게 중단했던 것은 미리 계획되어져 있던 '제주도 한 달 살기'때문이었다. 

'이별이 슬픈 날 / 바다를 건너 이수(離愁)역으로 가 / 탱고를 춘다 / 뭍으로 행선지를 바꿨을 뿐인데 / 한바탕 추고 나면 / 푸른 정맥에 로제 와인이 흐르고 / 늙은 Bluetooth가 / Sad Sad Sad Sad / Sad i'm so sad / 앙하고 우는데 / 잊혀지는 슬픔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 돌아갈 행선지를 / 이수 대신 사당(Sad Ang)역으로 우회하여 / 다시 이별의 섬으로 간다 / 끝내! / 황홀하게 이별을 끝내!' 탱고 수업을 중도에 중단하면서 제주도로 떠나면서 짙은 아쉬움을 담고 썼던 필자의 시(詩) '황홀하게 이별을 끝내'이다. 필자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시 한 편을 선사한 탱고(tango)는 황홀하게 이별을 끝낼 수 있는 인생의 전환점이 된 매우 소중한 추억이었다고 장담할 수 있겠다.

시인 공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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