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과 겸손
친절과 겸손
  • 현대일보
  • 승인 2024.02.23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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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 철
중앙대 명예교수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공격하자, 다음 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연설문에서 ”어제, `1941년 12월 7일은 불명예스럽게 살게 될 날, (yesterday, December 7, 1941—a date will live in infamy)“이라는 의미있는 말을 남겼다. 

내가 초등학교를 가기 전 유아기에 가장 기억이 나는 것은 증조 할아버지와 만남이었다. 증조할아버지는 내가 4살 때인 1945년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내가 8살 때인 1949년에 돌아가셨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기억은 거의 안 나지만, 증조할아버지의 말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것은 ”증조할아버지의 나에 대한 과찬 내지 칭찬의 말이었다. 

당시는 쌀이 매우 귀하던 시기였다. 10여 개의 가구가 사는 마을에서 쌀 구경을 할 수 있는 가구는 2,3개에 불과했다. 그런데 어느날 우리 집 안 마당에서 쌀벼단을 타작해 쌀을 수확하는 과정에서 일부 쌀알들이 질척한 땅에 박혀있는 것을 보고 나는 무심코 땅에 박혀있는 쌀알들을 꼬챙이로 끄집어내고 있었다. 사랑채의 방에서 이 모습을 내다 보고 있던 증조할아버지는 “상철은 커서 아주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한 말”이 지금도 생생한 추억으로 남는다. 

내가 어려서 만나, 가장 많은 시간을 만난 사람은 할머니다. 할아버지는 내가 8살 때 돌아가셨지만, 할머니는 내가 24살로 대학 2년 때인 1965년에 돌아가셨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은 내가 어렸을 때, 작은 삼촌의 결혼을 시키는 과정에서 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우리 집에서 고개를 넘고 넘어 10리 이상 떨어진 ”개나리“라고 하는 동네에 가서 하루 묵으면서 작은어머니가 될 사람의 선을 보았던 것이다. 

나는 이제 80을 넘었다. 나이가 들수록 만나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겸손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을 만날 때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미소띤 얼굴을 보여 주어야 한다. 둘째,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을 한다. 셋째, 애나 어른이나 나이에 관계없이 반말이 아닌 존대말을 쓴다. 네쌔, 말을 하기보다 들어 준다. 다섯째, 칭찬에 인색하지 않는다. 여섯째, 부정적인 말보다 긍정적인 말을 한다. 일곱 째,  판단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여덜 째, 감정표출을 자제한다. 

나는 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하루 일과 중에서 아파트 주민을 가장 많이 만난다. 나는 아이고 어른이고, 남자고 여자고,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먼저 인사를 하고  미소를 지으며 안녕하세요 하고 말을 건넨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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