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 명예교수
우리 대학 동기들이 이제는 80을 넘었다. 그는 수석 집을 발간 하게 된 동기를 이렇게 적었다. 1974년경만 하더라도 일과 시간과 싸우느라 자연을 즐기는 것이 사치였고 더구나 수석을 사랑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석 전시회에 갈 기회가 있어 거기에 출품된 돌 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거기에 매료되었다. 이를 계기로 수석에 입문하게 됐다.
1974년경, 수석 전시회에 함깨 있던 친구와 석우(돌을 사랑하는 친구)가 되어 휴일이면 배낭을 메고 47년간, 이름난 수석 산지인 강과 여러 고장의 천변을 찾았다. 그는 돌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돌에도 의미가 있고, 뜻이 있다. 돌은 자연이 만든 작품, 하늘이 내린 소산으로, 그 아름다움은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수석은 인연을 통한 만남이다. 색채와 의미, 형상과 문양이 주는 생명력의 마력이 있다.
그의 수석 모음 책에는 100여 개 이상의 수석 사진과 함께, 수석의 크기와 모든 수석에 고유한 이름을 지었고, 모든 수석에 의미를 부여하는 설명을 했다. 예를 들어 폭포라는 수석 사진의 밑에는 수석의 크기, 수석 이름 (바위) 그리고 “삼단 폭포가, 산정의 만년설이 녹아내리는 피오로드한 자락 여기에”라는 부연 설명이 있다. 수석 이름도 가지가지다. 부부 바위, 미인 석, 만년 설상, 동굴 바위, 큰 스님, 미소, 거북, 물개, 밀림, 삼신산, 선녀탕. 삼층석탑, 천의 얼굴, 복두꺼비, 천하제일 봉, 장사 바위 등의 다수가 있다.
수석인이자 시인인 김일두는 개인 석보를 통해 “수석을 돌과의 대화로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연주의 철학자이며 실천적 초월주의자인 헨리 소로는 자연 속에서 고독(solitude)을 즐긴다고 했다. 소로는 자연을 오고 갈 때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자연에서 묘한 자유 (strange liberty) 를 느낀다고 했다. 소로는 자신이 월든 호수가의 숲속에 오두막을 짓고, 홀로 살면서도 전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다음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