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통해 본 행복과 민주주의
미국 대선 통해 본 행복과 민주주의
  • 현대일보
  • 승인 2023.03.31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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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벨트는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이 진주만을 공격하자 연합군 편에서 전쟁을 선포해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그는 전생이 승리로 끝나는 것(1945.8.15.)을 보지 못하고 사망했다. 루스벨트는 1935년 사회보장 제도를 신설했는데, 당시 미국인의 평균수명은 61세였다. 루스벨트는 1933년 3월 4일 첫 취임 연설에서 “미국은 회복하고 번영할 것이며(this nation will revive & prosper),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 (the only thing we have to fear is fear itself) 즉, 공포로부터의 자유“ 라고 천명해 경제공황과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의욕(desire)과 동기(motive)를 불러일으켰다. 

루스벨트의 4대 자유 즉, 공포로부터의 자유,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언론의 자유, 신앙의 자유는 미국의 경제를 부흥시키는데 구심점이 되었다. 루스벨트의 4대 자유는 그리고 2차 대전 후 세계평화와 인권, 친환경적인 발전 (sustainable development)을 목적으로 하는 국제기구인 유엔(1945.10.24.)을 탄생시켰다. 루스벨트는 1942년 워싱턴의 더위를 피하기 위해 백악관에서 113킬로미터 떨어진 메리랜드주 산장에 대통령 가족을 위한 전용별장인 캠프데이비드를 설립했다. 

루스벨트는 취임한지 8일만에 6천만이 청취한 라디오 노변 대담(fireside chat, 1933.3.12.)의 성공으로, 미국을 위기에서 구했다. 루스벨트는 4선에 당선되어 취임, 3개월(93일) 후인 1945년 4월 12일 사망해, 트루먼(Harry S. Truman)이 33대 대통령(민주, 1945-1953)에 취임했다. 

트루먼은 1947년 전쟁 성(Department of War)과 해군 성(Department of Navy)을 통합하여, 국방부로 개편했다. 최초의 국방장관에는 해군 장관 출신의 포레스탈 (James Forrestal)이 임명되었다.  같은 해 트루먼은 국가안전을 위한 중앙정보부(Central Intelligence Agency)를 신설했다. 1947년에는 트루먼 독트린 (Truman Doctrine)에 의해 그리스와 터키에 4억 달러의 군사 및 경제 원조를 제공했다. 이어서 마셜(George Marshall, 국무장관)은 마셜 플랜을 통해 패전국인 독일과 유럽의 경제 재건과 복구를 위해 150억 달러(1948-1951)를 지원했다. 1948년에는 소련의 베를린 봉쇄에 맞서 대규모 공수작전을 폈고, 1949년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신설했다. 트루먼은 1948년 대선에서 일반의 예상과는 달리 자력으로 대통령(1945-1953)에 당선되었다. 

1952년 대선에서는 공화당의 아이젠하워(Dwight Eise nhower)가 34대 대통령 (1953-1961)에 당선되었고, 1956년 선거에서 재선되었다. 노르만디 상륙작전으로 2차대전의 영웅이 된 아이젠하워는 선거전에서 한국전쟁 (1950. 6.25.-1953.7.27.)의 종식을 약속했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한국전을 종식 시키기 위해 한국을 방문할 것을 약속했으며, 당선된지 1개월 후 약속대로 한국을 방문해, 한국을 방문한 최초의 대통령이 되었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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