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통해 본 행복과 민주주의
미국 대선 통해 본 행복과 민주주의
  • 현대일보
  • 승인 2022.12.2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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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반 연방당 (Anti-federalist 또는 민주공화당, 현 민주당)은 신헌법을 반대했고, 최소한의 정부 (responsive government)를 원했고, 농민 세력을 지지했고, 대외관계에서는 프랑스를 지지했다. 반 연방당의 지도자 가운데는 제퍼슨 (Thomas Jefferson, 초대 국무장관, 3대 대통령), 매디슨 (James Madison, 4대 대통령) 등이었다. 

1789년에는 각 주에서 선출된 대통령 선거인단 (Electoral College)에 의해 워싱턴(George Washington, 1789-97)이 초대 대통령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장일치로 당선)에 그리고 애덤스가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초대 내각은 5개 부처 (국무, 재무, 전쟁(국방)장관, 검찰총장, 우체국장)였다. 워싱턴은 1789년 4월 30일 첫 수도인 뉴욕의 월스트리트 가에 있는 연방 관(Federal Hall)에서 취임 선서를 했다. 수도는 1년 반 후 2번째 수도인 필라델피아로 옮겼다. 현 수도인 워싱턴 DC로 옮긴 것은 1800년 6월 11일, 2대인 애덤스 대통령 때였다. 워싱턴은 대통령의 임기를 재선에 의한 8년으로 제한하는 최초의 대통령이 되었다(he became the first president to limit his tensure to two terms). 

워싱턴에 이어 2대 대통령 선거 (1796. 3.4)에서는 선거인단 표에서 최고 득점자인 애덤스(John Adans)가 대통령이 되고, 차점자인 제퍼슨 (Thomas Jefferson)이 부통령이 되었다. 하원의원은 인구 비례에 의한다는 원칙에 따라 1790년에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센서스 (인구조사)가 실시되었다. 공식 집계된 미국 인구는 400만이었다. 최대 도시는 필라델피아 (42,000명)였고, 뉴욕은 2위 (33,000명)였다. 다음으로 보스턴, 찰스톤, 볼티모어는 각각 18,000명 정도로 대도시에 속했다. 주별 인구를 보면 버지니아 (69만), 펜실베이니아 (43만), 노스 캘로라이나 (39만), 뉴욕 (34만) 등의 순이었다. 

워싱턴의 재임에 이어, 애덤스(John Adams)가 2대 대통령(1797-1801)에 당선되었다. 애덤스는 연방당 출신으로 프랑스와 전쟁을 지지했다. 애덤스 정권의 전쟁 준비에 따라 의회는 35,000명의 군대를 승인했고,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세금을 부과해야 했다. 세금은 소지주자들에게 부과되었기 때문에 반대 여론이 거셌다. 미국에는 그리고 25,000명의 외국인들이 있었는데 이들도 가난하고 돈이 없어 세금 부과를 반대했다. 애덤스 정권은 이런 반대 세력을 사전에 막기 위해 외국인 법과 선동법 (Alien & Sedition Acts, 1798-1801)을 제정했다. 이 법의 목적은 애덤스 정권의 전쟁 준비와 이에 따른 세금 부과에 반대하는 언론을 규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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