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 <하략>
이 시(詩)는 시인 김수영이 47세로 요절하기 보름 전에 남긴 ‘유고시(遺稿詩)’입니다.
1960년 3·15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승만 자유당 정부가 정권 연장을 하려 공권력을 동원해 온갖 불법과 부정선거 행위를 자행하자, 대구(2·28 민주 의거)를 시작으로 대전(3·8 민주 의거)과 마산(3·15 마산 의거)에서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를 일으켰습니다.
이 시위 과정에서 당시 마산상고 1학년 김주열 학생이 실종되고,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왼쪽 눈에 최류탄이 박힌 그의 참혹한 주검이 떠오르자 독재 정권에 맞선 시위는 들불처럼 순식간에 전국으로 확산됐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경찰과 군대를 동원, 유혈 진압과 계엄령으로 학생과 시민들의 시위를 막아보려 했지만, 민중(民衆)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과 독재정권에 대한 투쟁을 사그라지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下野) 성명과 함께 12년 장기 독재는 국민의 민주 혁명을 통해 막을 내렸고, 학생과 시민들이 흘린 피와 땀으로 4·19혁명은 민주주의의 파란 싹을 틔웠습니다.
1950년대 서구 언론이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는 것과 같다.’라고 비아냥거릴 정도로 당시 대한민국의 현실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3년간의 한국전쟁의 참화와 상흔이 채 가시지도 않은 국토, 1인당 GDP 70달러에 불과한 최빈국, 독재 정권의 장기 집권과 부정부패가 만연한 사회 현실에서 민중들에게 민주주의란 어쩌면 사치이면서 배부른 꿈일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집 밖을 나서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풀’과도 같은 대한민국 국민은 자유당 정권의 독재와 억압이라는 서슬 퍼런 ‘바람’에 맞서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들풀처럼 일어나, 마침내는 4·19혁명이라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효시(嚆矢)가 되는 사건을 통해 독재 정권의 붕괴와 민주 정부로의 정권 교체를 일궈낸 것입니다.
얼마 전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민주적으로 치러졌고, 민주적인 정권 이양이 이뤄지게 되는 올해는 4·19혁명 62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아직 코로나19 팬데믹(COVID19 Pandemic)이 3년째 계속되고, 유럽에서는 우크라이나-러시아 간의 참혹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대한민국은 어느덧 세계10대 무역 대국이자, 국민소득 3만5천불이라는 세계가 인정하는 선진국 반열로 성장해 왔습니다.
62년 전 국민의 힘으로 독재를 종식시킨 4·19혁명의 싹은 어느 덧 전 세계가 본받고 싶어 하는 성숙한 시민의식과 민주사회라는 커다란 아름드리나무로 자라난 것입니다.
제62주년 4·19혁명 기념일에 우리는 과거 독재와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민주주의를 쟁취하고자 피땀 흘리신 민주 영령과 열사들의 넋을 기리는 한편, 어렵게 이룩한 오늘의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을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줄 수 있도록 자유 · 민주 · 정의의 4·19혁명 정신을 되새겨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