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에서 하루, 바람 따라 탐욕도 사라져下
산사에서 하루, 바람 따라 탐욕도 사라져下
  • 현대일보
  • 승인 2021.01.05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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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중 오
고양주재·국장대우

 

산사의 밤은 깊어만 가는데 쉽게 잠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척이다 어디선가 아련히 들려오는 꿈인지 생신지 모를 목탁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새벽 4시, 말을 아끼는 ‘묵언수행’을 하는 시간이다.

모두 소리 없이 일어나 멀리 범종소리를 들으며, 스님들과 새벽을 깨우는 예불을 올린다.

비몽사몽 이어지는 스스로 자신 없어 하던, 피할 수 없는 108배 시간이다.

백팔 예참문을 한 구절 한 구절 읽으며 1배, 2배, 3배…. 무심한 상태로 행하고자 했던 결심은 어디가고 29번째 구절에서 목이 메더니 눈물, 콧물 범벅이 되고 무릎 허리 통증으로 신음하던 사이 어느새 무사히 끝이 난다.

다리가 풀려 정신이 혼미해지는 가운데 자연과의 교감을 한껏 만끽하며 편안하고 여유로운 새벽 숲길 걷기 명상이 이어지고, 약수로 정신을 차리고 경내로 들어오니 날이 밝아오기 시작 한다.

사물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공기가 무척 상쾌하다.

새벽 6시, 주지스님과의 참선시간.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보십시오.

내 마음이 무엇이고 어디 있는지를 살펴보십시오 라는 스님의 말씀이 하나도 귀에 안 들어올 만큼 다리가 편치 않는 좌선시간은 그야말로 참을 수 없는 고통의 연속이다.

아침 7시 30분, 불가에서 하나의 수행법이라 일컫는 생각보다 무척 어려운 발우공양을 하며 낭비 없는 한 끼 식사의 소중함을 배운다.

아침 9시, 마지막으로 스님과 차 한 잔 함께하며 마음을 나눈다.

종교가 다르지만 아버지와 함께 참가했다는 학생, 종교의 신비한 이미지가 강해 호기심에 참여했는데 불교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고 편안한 시간 이었다는 사람, 좌선이 너무 힘들었으나 나를 돌아볼 좋은 경험이었다며 또 찾고 싶다며 소중한 인연과의 헤어짐을 서운해 한다.

특히 108배를 올리며 지나온 삶을 되돌아 볼 수 있었던 참회의 시간, 스님과의 대화로 삶의 방향을 짚어보았던 시간들, 뭐니 뭐니 해도 참는 것보다 더 근본이 되는 것이 없으며 이 세상 참지 않고는 살수 없다는 스님의 소중한 말씀, 짧으나마 진정한 나를 돌아보고 나 자신을 비우는 시간이 된 것 같다.

일주문을 나와 다시 속세에 몸을 맡기고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아직도 내 귓가에는 목탁소리가 생생히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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