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철교수의 건강과 행복 메시지
이상철교수의 건강과 행복 메시지
  • 현대일보
  • 승인 2020.10.04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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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 철

중앙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학부
명예교수

 

링컨의 “집안이 분란하면(house-divided)이란 연설” 노예에 관한 그의 입장을 분명히 했고 노예문제에 관한 전국적인 대변인(national spokesman)으로서의 신용을 공고히 했다. 이 연설문은 순식간에 전국적으로 신문과 팜프렛 등에 널리 보도 되있다.  

링컨은 미국 정부가 반은 노예주(15개주), 반은 자유주(15개주)로 나뉘어져 계속 반목하면 오래 지탱될 수 없고 노예제도는 언젠가 소멸될 것이라고(slavery would one day perish)했다. 성경을 인용한 링컨의 이 연설로 링컨은 유명해졌고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링컨은 1858년 상원의원 선거에서는 패 했지만 이 연설로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공화당의 대변인으로 전국적인 인물이 되었다. 

링컨은 공화장 대통령 후보지명을 받기전인 1960년 2월27일 뉴욕의 쿠퍼유니언 연설(Cooper Institute Speech)에서 노예문제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독립선언문과 헌법을 기초한 건국의 아버지들은 노예제도가 새로운 영토에까지 파급되는 것에 반대 했으며 노예제도가 언젠가(one day) 폐지될 것(extinct)으로 믿었다고 했다. 부연해서 링컨은 나는 천성적으로 노예제도에 반대하며, 노예 제도가 그르지 않다면 이 세상에 그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그로부터 2년후인 1860년 11월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합중국은 바로 분열(disunion)과 불가피한 전쟁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남부의 노예주의자들은 대통령 당선자(President-elect)인 링컨을 노예제도 폐지를 찬성하는 극단론자로 여겼다. 이로 인해 링컨은 노예주의자들로부터 신변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 

이런 배경 하에 링컨은 1861년 3월4일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2월11일 일리노이 스프링필드를 떠나면서 기차역으로 환송나온 1천여명의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음과 같은 의미 심장한 연설을 했다. 링컨이 탄 기차는 스프링필드를 출발해 오하이오, 서부 펜실메이니아, 뉴욕을 경유해 워싱턴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나는 지금  언제(when) 또는 과연 돌아올지(whether)모르면서 정치적 고향인 이곳을 떠난다. 왜냐하면 나에게 주어진 사명(task)이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 보다 막중하기 때문이다. 만일 나를 언제나 보호해 준 하나님(Divine Being)의 도움이 없이는 성공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돕는다면 나는 실패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워싱턴에게 주어진 책임보다 링컨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이 보다 막중하다고 한 것은 워싱턴은 식민 종주국(colonizing power)인 영국에 맞서 싸우는 독립전쟁이었으나 링컨이 싸우게 될 전쟁은 미국인들끼리 갈라져 싸우는 동족 상잔의 전쟁(Americans fighting Americans)즉 남과 북의 전쟁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가운데 링컨은 첫 취임 연설을 했다. 첫 취임 연설문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구절은 “우리(남 과 북)는 적이 아니라 친구이다. 우리는 적이 되어서는 안돤다(We are not enemies, but friends. We must not be enemies)”는 것이다. 그는 첫 취임 연설을 하는데 35분이 걸렸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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