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철교수의 건강과 행복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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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일보
  • 승인 2019.08.04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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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복산, 한국 언론과 언론학의 개척자 (22)

정부 보다 인간이 먼저라는 말은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가 우선되고 그 만큼 존중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19세기 자연주의 철학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불복종(civil disobedience)사상이 21세기 들어서도 더욱 각광을 받는 이유는 시민 개개인의 존엄성과 권리를 그 무엇보다 중요시 했기 때문이다.
시민불복종 사상의 핵심은 국가의 부도덕하거나 부당한 일을 개인에게 강요해서는 안되며 시민은 그러한 국가의 부당한 강요를 거부할 권리를 지닌다고 했다. 소로가 이글을 쓰게 된 동기의 일부는 시민정부의 부도덕한 노예제도와 부당한 전쟁(멕시코 전쟁, 1846-48)에 대한 혐오때문이라고 했다.  
소로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그가 자신이 직접 지은 월든의 오두막에서 생활을 할 때 부도덕한 정부에 대한 항의 표시로 인두세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하루간 감옥에 구금된 사건 때문이었다. 소로에 있어서 이 한 여름밤의 투옥 사건은 경미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소로의 명성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그 이유는 그가 쓴 시민불복종은 20세기 미국의 문학에서 가장 유명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소로의 시민불복종 사건은 20세기 간디, 넬슨 만델라, 마틴 루터 킹, 톨스토이, 헤밍웨이 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뿐 아니라 이 사상은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회운동가들에 영향을 미쳤고 21세기에는 수많은 환경운동가들에도 영향을 미쳤다.
곽복산의 대외적인 마지막 업적으로는 그가 1959년 신문학회를 설립한 것이다. 그가 신문학회를 설립할 당시에는 신문학과가 있는 대학은 중앙대학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곽복산은 미래를 생각해 신문학회를 설립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신문학을 가르치는 대학이 그리 많지 않았다. 몰론 1953년 6.25 동란 후 서울이 수복되면서 신문학을 가르치는 대학이 늘기는 했다. 이때, 곽복산은 중앙대학에서 신문학을 가르쳤고, 오주환은 고려대학에서, 이해창은 이화대학에서, 그리고 장용은 한양대학에서 신문학을 가르쳤다.
이를 배경으로 1959년 곽복산은 중앙대학의 전임교수인 임근수, 최준, 고려대학의 오주환, 한양대학의 장용 등과 함께 한국신문학회를 설립했다. 초대 회장은 곽복산이 맡았고, 부회장은 임근수 그리고 대학 측 이사로는 이해창(이화대)과 최준(중앙대)이 맡았다.  언론학 일 세대인 이들 가운데 곽복산, 임근수, 이해창, 최준은 한국언론학의 사비조로 불린다. 임근수는 연희전문 연구과를 나왔고, 최준은 일본 메이지대 신문고등연구과를 나왔고, 이해창은 과복산의 일본 상지대학 후배로서 신문학과를 졸업했다. 중앙대학에 이어 신문학과를 설립한 대학은 이화대(1960), 한양대(1963), 고려대(1965), 경희대(1966), 성균관대(1967), 서강대(1967), 연세대(1972), 서울대(1975)순이었다.
한국신문학회는 1992년 한국언론학회로 명칭을 변경했다. 1959년 창립 당시 불과 수십 명 밖에 되지 않던 한국언론학회 회원이 59년이 지난 2018년 현재 1312명으로 증가한 것을 보면 곽복산 교수의 크나 큰 업적이 아닐 수 없다.  한국언론학회의 역대 회장 가운데 1대에서 10대까지의 회장을 보면 다음과 같다. 초대(곽복산, 중앙대), 2대(김규환, 서울대), 3대(최준, 중앙대), 4대(박유봉, 한양대), 5대(이상희, 서울대), 6대(최정호, 연세대), 7대(한병구, 경희대), 8대(김동철, 이화대), 9대((오진환, 한양대), 10대(서정우, 연세대). 그리고 2018년 현재 45대 회장은 이재진(한양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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