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철교수의 건강과 행복 메시지
이상철교수의 건강과 행복 메시지
  • 현대일보
  • 승인 2019.07.14 15:54
  • icon 조회수 28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곽복산, 한국 언론과 언론학의 개척자 (19)

이같은 비언어적인 커뮤니케이션은 과학과 교통의 발달로 인간의 교류가 국제적으로나 문화 횡단적으로 빈번해 짐에 따라 그 중요성이 점차로 증가하고 있다. 몸짓, 눈짓, 손짓과 같은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은 특히 서로 문화가 다른 나라를 방문하거나 혹은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을 만났을 때 같은 몸동작이라도 다른 의미를 나타내기 때문에 이에 관한 연구와 교육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문화적 배경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서로 대화를 나눌 때 전달자가 피전달자인 상대방을 두눈이 서로 마주칠 정도로 정면으로 보지  않고 아래를 내려다 볼때 어떤 문화권에서는 겸손과 예의를 나타내지만 다른 문화권에서는 실증이나, 무례 그리고  무관심을 나타내기도 한다.

또 다른 예로 대화상의 거리(conv ersational distance)를 인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화를 하려면 상대방과 어느 정도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이 대화상의 거리는 문화권에 따라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북미인은 대화상의 거리가 남미인에 비해 대화상의 거리가 멀다.

우연한 기회에 북미인과 남미인이 긴 복도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려고 했다. 대화상의 거리가 짧은 남미인이 북미인과 대화를 하려고 가까이 다가 가니까 대화상의 거리가 먼 북미인은 자신이 편안한 대화상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뒷 걸음을 치다 보니까 이 두사람은 별로 대화도 하지 못하고 복도의 한끝에서 다른 끝 까지 밀과 밀리기를 거듭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리고 상대방과 대화를 주고 받을 때 상대방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 끄덕하면 우리 문화권을 포함해, 어떤 문화권에서는 긍정을 의미하지만 또 다른 문화권에서는 부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같이 비언어적인 수단에 의한 켜뮤니케이션은 세계적으로 공통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비언언적인 커뮤니케이션에 의한 행위를 우리는 무언의 언어(silent langu age) 또는 몸짓언어(body language)라고 한다. 이런 무언의 언어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몸동작 및 얼굴표정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있다. 이같은 커뮤니케이션의 예로는 제스처, 몸가짐(posture), 얼굴표정(미소, 너털웃음, 찡그림, 하품 등), 눈동작(윙크나 시선) 등이 있다.

둘째, 근접언어적(paralanguage)인 커뮤니케이션이 있다. 이는 언어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음성을 높힌다든가, 말을 빠르게 또는 느리게 한다든가 하는 일체의 음성효과를 의미한다. 미국의 대학원 세미나에 참석해 보면 인도 학생들이 논문을 발표하거나 토론을 할 때 같은 영어라도 말을 어떻게 빠르게 하는지 듣는 교수조차 천천히 말 하라고 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셋째, 접촉(touching behavior)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이 있다. 대인커뮤니케이션은 단순한 언어보다는 상대방의 등을 두드려 준다든가 손을 잡아 준다든가, 포옹을 하는 것 같이 대인간의 접촉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이 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 이는 특히 대인간의 느낌(feelings)이나 감정(emotion)을 표현할 때 많이 쓰인다.

나는 미국의 대학에서 유학을 할 때 평생잊지 못할 접촉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을 목격 했다. 미국의 대학은 여름방학은 한국보다 다소 길지만 겨울방학은 윈터브레이크(winter break)라고 해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2주간 잠시 쉬는 것(break)이 고작이다.

나의 룸메이트는 시카고 근교에 살고 있었다. 룸메이트가 이번 겨울브레이크는 시카고에 있는 자기 집에서 보내자고 해 그의 차를 타고 미네소타 미니아폴리스로부터 시카고 까지 9시간 이상 걸려 그의 집에 도착했다. 그의 집에서 일주일 이상을 머물면서 구경도 많이 했고, 아주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미니아폴리스로 떠 나는 날 아침 그의 아버지가 어머니, 동생들과 같이 아들을 배웅하러 집앞 차고 까지 나왔다. 아버지는 떠나는 아들을 향해 일체의 말 한 마디 없이,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아들의 등만 몇 번 쓰다듬어 주는 것이었다. 우리의 문화로는 도저히 이해 할수 없는 이 장면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한다.

<다음호에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