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철교수의 건강과 행복 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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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일보
  • 승인 2019.06.09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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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복산, 한국 언론과 언록학의 개척자(14)

◆ 곽복산, 한국 언론과

언록학의 개척자(14)

미국에도 독일의 신문연구소나 일본의 신문연구실과 유사한 기구가 있다. 미국의 미네소타 대학에는 저널리즘과 매스커뮤니케이션 스쿨안에 독일의 신문연구소와 유사한 “실하 미디어 센터(Silha Center for the Study of Media, Ethics & Law)”라는 기구가 있다.

이 센터의 초대 소장(센터 장)이 다놀드 길머(Donald Gillmor)교수였다. 그는 미국 대학 매스커뮤니케이션의 분과인 미디어 법과 윤리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교수였다. 이 길머 교수를 후원한 인사가 Silha라는 유명인사 였다. 길머 교수는 Silha 석좌교수(Silha Professor)자격으로 Silha 미디어 센터라는 기구를 설립했다. 길머 교수는 10년 이상 초대 소장을 맡았고 연구와 활동에 필요한 기금은 Silha 재단으로부터 후원을 받아 미디어 법과 윤리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곽복산은 이같이 그가 처음 구상했던 조선신문연구소와 신문과학연구소는 결실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1957년 중앙대학교에 신문학과를 설립해 초대주임교수 된 후 학과와 학회 발전에 기여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 결과 그는 초대 주임교수가 된지 12년만인 1969년 중앙대학교에 신문방송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소에 대한 그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그는 1971년 타계할 때 까지 초대 연구소장직을 맡았다.  

곽복산은 중앙대학교 신문방송연구소의 창설을 기념하는 자축파티(1969.12.5)에서 이런 말을 했다. 앞으로 서울신문학원의 졸업증서는 중앙대학교 신문방송연구소 소장의 명의로 발급된다고 하면서 이제부터 서울신문학원 동문 여러분은 중앙대학교 동문의 일원으로 영원히 남게 될 것이라고 했다.

중앙대학교 신문방송연구소는 그후 중앙대학교 언론연구소로 명칭을 변경했으며 일년에 한번 씩 학술지인 “언론연구논집”을 발행해 오고 있다. 이와 관련 해 필자가 이 연구소의 소장 시절인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제6집에서 제9집을 발간한바 있다.

언론연구 제6집(1997)은 특집으로 외국어 대학의 정진석 교수가 기고한 “곽복산 교수와 서울신문학원 50주년” 과 필자가 쓴 “한국신문이 보도한 국제뉴스의 특성에 관한연구”를 포함해 모두 11편(275쪽)의 논문을 게재했다. 제7집은 특집으로 필자 외 네 명이 공동연구한 “민주주의와 상업주의 관점에서 본 박세리 보도에 관한 분석”외에 7편(162쪽)을 게재했다.

제8집은 원로교수인 손용의 화갑특집으로 발간했는데 이정춘 교수의 “미디어 환경변화와 여가문화”를 포함해 모두 7편(168쪽)의 논문을 게재했다. 필진을 보면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와 강사, 그리고 박사과정의 대학원생들이 주로 기고를 했고 필요하면 외부 대학교수에 기고를 의뢰하기도 했다.

곽복산은 전술한바와 같이 신문과학연구소가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자 1947년 2월18일 자로 미 군정청 학무국으로부터 조선신문학원으로 인가를 받았다.

곽복산이 처음 계획했던 신문과학연구소는 뜻대로 되지 않았으나 이 과정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체험했을 뿐 아니라 신문학원 운영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도움을 줄 많은 후원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영향력있는 후원자는 백낙준(연희대 총장)이었다.

백낙준은 1913년부터 중국과 미국에서 공부를 했다. 그는 미국서 “기독교 전파에 있어서 출판물의 영향”이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같이 백락준은 언론의 중요성과 영향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해방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언론인 양성기관의 전신이어였던 신문과학연구소의 소장을 맡았고 국내 대학으로는 처음으로 연희대학에 신문연구실을 설치했다.

조선신문학원은 1947년 3월 초 처음으로 6개월 과정의 전수과 과정의 학생을 모집했다. 지원자는 모두 306명으로 이들 가운데 60명을 선발해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개원식에 이어 7월부터 중앙여중 임시 교실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학 교육이 시작됐다.  강사진은 모두 32명이 참여했다.

강사진 가운데는 백낙준(연희대 총장), 곽복산(신문과학연구소 이사)외에 언론사 편집국장, 주간 급과 유명대학에 재직중인 각 전문분야의 교수들이었다. 언론사 출신으로는 김동성(합동통신사 사장), 고재욱(동아일보사 주필), 설의식(새한민보 사장), 배성룡(세계일보 주필)등이 참여했고 대학교수 출신으로는 양주동(둥국대 교수), 이순탁(연희대 교수), 김상기(서울대 교수), 이병기(서울대 교수), 그리고 정석해(연희대 교수)등이 참여했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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