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일보 칼럼] ◆ 스승과 제자, 그리고 행복 (5)
[현대일보 칼럼] ◆ 스승과 제자, 그리고 행복 (5)
  • 이상철
  • 승인 2018.06.17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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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복산은 신문학을 언론학으로 확대해 언론학의 학문연구 대상과 영역을 확대시켰다.

그는 최초로“언론학”이란 용어를 쓰기 시작했고 최초로 언론학개론(부제 매스미디어 종합연구, 편저, 일조각, 1971)을 발간했다. 그는 이 책의 서두에서 언론 및 언론학과 관련해 이런 말을 했다.

한국의 신문학은 이제 기로에 직면했다. 이 분야의 학문을 체계화 하고 독립된 과학으로서 정립시켜야 할 단계에 처해있다. 나는‘언론현상’을 대상으로 학문적인 체계화를 모색해 왔다.

언론이 매스 미디어가 되는 신문, 방송, 영화, 잡지 등이 그 연구영역으로 포함됨은 당연한 것이다. 이의 기초가 되는 ‘언론학구상’은 1970년 중앙대학교 정경논총(계간, 봄호)에 발표 했다. 곽복산은 그리고 언론을“인간의 눈이요, 귀요, 입이요, 삶의 외침인 표현이다. 또한 민주주의의 원형이다"라고 했다. 그가 언론을 인간의 눈이요, 귀요, 입이요, 삶의 외침이라고 표현한 것은 언론은 매스미디어 뿐 아니라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학문분야의 대인간 커뮤니케이션(interpersonal communication)에서 다루는 말의 커뮤니케이션(verbal communicat

ion) 뿐 아니라 무언의 커뮤니케이션(non-verbal)까지 포함된 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곽복산 교수를 알게 된 것은 1966년 법학과를 졸업하고 신문학 석사과정에 입학하면서 부터였다. 나는 학부에서 법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신문학과 교수와 과내 분위기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곽복산을 내가 지도교수로 택한 것은 그가 나의 고등학교 시절 국어교과서에‘식목일’에 관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고 나의 관심 분야인 신문학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나는 학부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4년 내내 교내 영자신문(중앙헤럴드, 월간)기자 생활을 했고 졸업을 하고도 총장비서실(설립자인 임영신 총장)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가지전까지 비서로 있으면서 영자신문 편집국장을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문에 대해 관심과 열정을 갖게 됐다.

나는 그래서 석사 논문도 신문학과 법학이 둘 다 관련이 있는 논문(언론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연구, 1969.11)을 썼다.

그리고 곽복산을 평생 잊지 못하고 감사하는 내가 논문을 쓰도록 개인적으로 만날 때 마다 격려를 했기 때문이다. 나는 1966년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했기 때문에 정상적인 경우 4학기 째인 1967년 말(11월)이면 논문을 써야했다.

그러나 나는 비서실 근무와 영자신문을 책임 맡고 있었기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논문 쓰는 것을 미루다 보니까 거의 포기 상태였다.

내가 논문 쓰는 것을 미룬 또 다른 이유는 곧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곽복산의 끊임없는 격려와“논문이 별거냐 하면서”재촉도 하면서 용기를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결과 1년 반(3학기) 늦게 논문을 마칠 수 있었다. 나는 가끔 씩 당시를 생각하면 기쁘고 행복하다. 왜냐하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어야 하는데 끝을 맺지 못했다면 지금 얼마나 아쉽고 후회스러울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논문심사 2,3일 전 지도교수인 곽복산으로부터 갑작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전화 내용은 최준교수(방송학)가‘자네 논문은 최준이 아니면 절대 통과 시키지 못한다고 하니’당장 지도교수 이름을 바꾸라고 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지도교수를 최준으로 바꾸어 석사학위를 받게 됐다. 추측컨대 당시 석사학위 후보가 몇 명에 불과했는데 모두 곽복산을 지도교수로 정했기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으로 생각된다.

나는 나의 실질적인 논문 지도교수인 곽복산과 개인적으로 만나 밥(식사)도 가장 많이 먹었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한번은 학교 문밖에 있는 중국식당(영합)에서 그와 둘이서 짜장면을 먹었다. 당시 짜장의 면은 수타면이었기 때문에 면이 쫄깃쫄깃해 맛이 있었다.

나는 까만 짜장은 남기고 면만 골라 먹었다. 이를 본 곽 교수는 자네 “진짜는 안 먹고 가짜만 먹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했다. 이후부터 나는 짜장도 먹기 시작했다.

 

◇ 필자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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