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일보칼럼]행복의 순간, 리우 올림픽<3>
[현대일보칼럼]행복의 순간, 리우 올림픽<3>
  • 이상철
  • 승인 2016.10.24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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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메달 순위에서 보는 것과 같이 미국은 총 메달 순위로 보나 금메달 순위로 보나 2위인 중국과 비교해 압도적 우위를 차지한다.
그 이유는 위의 4가지 조건 외에 다양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미국을 따라 잡을수 없는 이유에 대해 싱가포르의 국부인 리콴유는 이런 말을 했다. 중국은 13억 인구 가운데서 인재를 발굴할 수 있지만 미국은 세계 73억 인구 가운데서 인재를 발굴할 수 있다고 했다.
마찬 가지로 중국은 13억 인구 가운데 스포츠 선수를 발굴할 수 있지만 미국은 세계 73억 인구 가운데서 스포츠 선수를 발굴할 수 있다. 한 예로 뉴욕의 인구 가운데 35% 이상이 외국인 1세들이고 196개국에서 온 젊은이들이 뉴욕의 공립학교에 적을 두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운동선수를 꿈꾸는 젊은이들도 많다. 이들 젊은이들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미국 시민이 되어 미국 선수로 뛸 수 있다. 반면 베이징을 찾는 외국인은 베이징 인구의 1%도 안 되고 중국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중국인으로 태어나야 하기 때문에 중국선수로 뛸 수도 없다. 
일인당 국민 소득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메달 강국이 된 것은 스포츠 정책에 기인한다. 이들 국가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체계적으로 선수를 키우는 스포츠 국가주의를 택했기 때문이다.
우리 올림픽이 10위 안에 들게 된 것도 준 국가주의를 택했기 때문이다. 엘리트 선수를 선발해 국가가 집중적인 지원을 했다. 뿐만 아니라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면 평생 연금의 혜택이 주어지고 남자의 경우 병역 혜택도 있어 선수들에게 강한 모티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한국의 메달 행진이 본격화 된 것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부터였다. 메달 19개(금6, 은6, 동7)를 따 종합7위를 차지했다. 양궁의 서향순이 여성 최초로 금메달을 땄다. 레슬링의 양정모는 1976년 몬트리올 대회에서 한국 최초의 금메달을 땄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한국은 33개의 메달(금12, 은11, 동10)로 종합 4위를 했다. 양궁의 김수녕이 개인과 단체에서 2관왕에 올라 신궁이라는 말을 들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에서는 29개의 메달로 종합 7위를 했고 마라톤의 황영조가 손기정(1936)에 이어 동양 선수로는 두 번째로 금메달을 땄다.      
1996년 애틀랜타 대회에서는 27개의 메달(금7, 은15, 동5)로 종합 10위를 했고 2000년 시드니 대회에서는 28개의 메달(금8, 은10, 동10)로 종합 12위를 했다. 2004년 아테네 대회에서도 30개의 메달(금9, 은12, 동9)로 종합 9위를 했고 2008년 베이징 대회에서는 31개의 메달(금12, 은10, 동8)로 종합 8위를 했다.
2012년 런던 대회에서는 28개의 메달(금13, 은8, 동7)로 종합9위를 했다. 한국이 처음 출전한 1948 런던 대회부터 2012년 다시 런던에서 열린 대회까지 획득한 총 메달 수는 243개(금81, 은82, 동80)였다.
2016년 리우 대회에서는 21개의 메달(금9, 은3, 동9)로 8위를 했다. 9개의 금메달 가운데 양궁이 4개, 태권도가 2개, 사격, 펜싱 그리고 골프에서 각각 1개의 금메달을 땄다. 이 대회에 첫 출전한 양궁의 장혜진(29)이 2관왕에 올랐다. 그는 이겼기에 웃은 것이 아니라 실패에도 불구하고 웃으며 도전했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단체전의 금메달의 맛을 ‘무지 개 빛 솜사탕,’ 개인전 금메달을 ‘배고플 때 먹는 초코파이’ 같다는 조크도 했다. 그래서 장혜진의 별명은 장긍정이다.  

<끝>

◇ 필 자

이상철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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