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일보칼럼]행복에 관한 10가지 생각<2-4>
[현대일보칼럼]행복에 관한 10가지 생각<2-4>
  • 이상철
  • 승인 2016.09.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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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의하면 미국에서 유학한 학생들이 거의 세계 모든 나라 정부 각료 가운데  포함돼 있다. 특히 정부 각료 가운데 미국 유학생들이 가장 많이 포진하고 있는 나라가 이란이다.
13년을 끌어온 이란 핵협상이 완전히 타결된 것(2015. 7. 14)도 이와 관련이 있다. 핵협상의 구체적 실무를 맡은 양국의 주역은 미국의 에너지 장관인 어니스트 모니즈와 이란의 에너지 장관인 알리 살레히였다. 이들은 둘 다 MIT 출신이다. 그리고 핵협정을 진두지휘한 미국의 국무장관은 예일대 출신이고 이란 외무장관은 샌프란시스코 대학과 덴버 대학을 나왔다.

8. 인도의 새로운 세계 지도자, 모디   
무명의 모디는 2014년 5월 인도의 총리로 당선됐다. 64세의 모디는 총리로 취임한지 불과 몇 개월 만에 트위터(twitt-er)상에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다음으로 팔로우어(지지자)가 많은 세계적인 정치 지도자로 각광을 받았다. 그는 취임 1년 만에 중국, 한국 등을 포함해 19개국을 방문했다.
모디는 1950년 지방 도시인 구자랫시에서도 아주 멀리 떨어진 한적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부친이 노점에서 홍차를 팔아 가족의 생계를 이어갈 정도로 가난했다. 모디는 말했다. 나의 유년기는 온통 가난에 시달렸다. 그러나 모디는 가난으로 인해 영감을 얻게 됐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됐다.
이 결과 모디는 인도가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한 이래 수도인 뉴델리의 엘리트 출신이 아닌 변방 지방의 비 엘리트 출신의 유일한 총리가 됐다. 모디는 정치적 엘리트 출신과는 거리가 먼 철저한 외부인(outsider) 출신이다.
모디는 17살 때 가정을 떠나 2년간 인도 전역을 여행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우익의 힌두민족주의 당(BJP)에 가입 했다. 그는 2001년 구자렛 시의 시장으로 일했다. 그는 재임기간 동안 구자렛 시의 경제를 평균 10%(2006~2011) 이상으로 성장시켜 능력을 인정받았다. 총리 선거에서 모디는 “구자렛 모델”이라는 구호를 내세워 간디 가문의 간디 2세를 물리치고 총리에 당선됐다.
2015년 1월 인도를 방문한 미국의 대통령 오바마는 종교적인 분쟁으로 인도가 분열되지 않고 하나로 뭉친다면 인도는 빠르게 성공할 것이라고 했다. 모디 총리는 인도의 헌법을 성서(holy book)에 비유하면서 인도 정부는 헌법에 근거해 카스트(세습적 계급), 신념, 그리고 종교에 대한 그 어떤 차별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모디는 같은 해 9월 답례로 백악관을 방문했다. 모디는 이 자리에서 인도와 미국의 관계를 한 마디로 표현 한다면 “천상의 동맹국(natural allies)”이라고 했다. 모디는 이어서 인도와 미국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인도가 미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혹은 “미국이 인도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보다 인도와 미국이 합쳐 세계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된다고 했다.

9. 삼성의 미국 특허 2위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특허(patent)는 발명품에 대한 독점적 점유권, 지적 상품에 대한 독점적 사용권을 말한다. 베네치아는 1474년 세계 역사상 최초로 특허제도를 도입해 시민의 지적상품의 독점적 사용권을 인정했다. 미국은 신헌법에 의해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 정부가 들어선지 1년 만인 1790년 특허제도를 도입했다.
한국은 2010년 뒤늦게 특허제도를 도입해 개인의 지적 상품권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특허권 보호는 왜 중요한가? 특허가 없으면 미래가 없다. 빌 게이츠는 1975년 19세로 하버드대학(2년)을 다니다가 중퇴하고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했다.
<다음 주에 계속>

◇ 필 자

이상철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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