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예의염치 헤아려 봐야할 때
지도자의 예의염치 헤아려 봐야할 때
  • 신원기
  • 승인 2016.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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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45세로 이조판서였던 오리 이원익(1547-1634)은 정유재란 이후 좌의정과 영의정·사도 도체찰사(四道都體察使.1600년.선조33)와 삼도 도체찰사(1601년)직에 올라 주요 지방의 국방과 민정을 총괄했다.
예순의 나이에 호성(扈聖) 2등공신과 완평부원군(完平府院君)에 책봉되었다(1604년.선조37) 이때에 그는 호성공신을 여러 번 거부했다.
대신하여 선무공신추대를 상소하며 자신의 공을 낮추어 세간의 쌀쌀한 눈초리를 맞았다고한다.
소심한 사람이라고 폄하하기도 했단다. 소심(小心)은 ‘대담하지 못하고 조심성이 지나치게 많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러나 이원익은 예의가치에서 수치를 아는 자세라고 하여 흔들리지 않았다.
“예를 받들어 욕심을 버리고 작은 마음을 갖춰 편안한 맘을 만드는 것”이 소심이라면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의 관중이 지은 ‘관자’의 ‘목민편’에 나오는 예의염치를 실천하는 선비의 곧은 자세가 아니겠는가.
예의염치는 예절과 의리와 청렴한 마음, 그리고 수치를 아는 태도로서 나라를 지탱하는 네가지 근간이라 말한다.
이와는 반대되게 행한 선조의 후안무치(厚顔無恥)했던 국가 운영과 논공행상이야 말로 흔히 말하는 소인배의 행동으로 조선사회를 위험에 처하게 한 무능한 군주라는 평을 피할 수 없지 않겠는가.
관중의 예의염치는 나라를 지탱하는 네가지 근본으로 “네 가지 근본 중 한 줄이 끊어지면 기울고, 두 줄이 끊어지면 위태롭고, 세줄이 끊어지면 엎어지고, 네 줄이 끊어지면 멸망하는데 기운 것은 바르게 하고 위태로운 것은 안정시키며 엎어진 것은 일으킬 수 있는 여지는 있으나 멸망하면 다시는 손을 쓸 도리가 없게 된다”고 했다.
비단 나라를 지탱하는데 에만 예의염치가 있어야겠는가. 크고 작은 단체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데에도 가정을 건사하는 데에도 꼭 필요한 근본이리라. 하물며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는 공인(公人)이라면 몰염치 해서야 되겠는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통치는 통치의 대상에 이익을 주고 그러므로 통치자로서의 강자는 자신의 이익을 도모한다기보다 통치 받고 있는 대상인 약자의 이익을 도모한다”고 플라톤의 국가론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지도자의 예의염치와 추진력을 헤아려 봐야할 대목인 듯하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사람 손무도 손자병법서에서 “진격을 함에 있어 공을 바라지 말고 후퇴함에 있어 문책을 두려워 말라. 오직 나라와 백성만을 생각하라”고 했다.
지금 포천시는 지도자의 예의염치를 두고 공직자는 물론 지역 주민들까지 파렴치하다고 한다.
지금 우리 모두는 지도자의 예의 염치와 추진력을 헤아려 봐야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신 원 기
<포천주재·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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