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일보칼럼] 굽힘과 행복 <4>
[현대일보칼럼] 굽힘과 행복 <4>
  • 이상철
  • 승인 2014.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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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에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일어난 일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있다. 마찬가지로 불행도 자신이 처한 상황(situation)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에 대한 생각에서 온다. 생각은 시간가운데서 존재하기 때문에 역동적 관계에서 보면 내가 이 순간에 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저 순간에 흑이 될 수 있고 연기적 관계에서 보면 내가 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타인에게 흑이 될 수 있다.
인도의 한 유명한 영적지도자는 50년 이상이나 세계를 돌아다니며 강연을 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이런 비결에 대해 한 마디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개의치 않는 것이라 했다. 
굽힘의 네 번째는 인간은 때를 떠나 살수 없기 때문에 때 앞에 굽혀야 한다. 지구상의 모든 것들은 때가 있다. 꽃이 피는 식물도 때가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때가 있다. 인간도 때가 있다. 오는 것도 때가 있고, 가는 것도 때가 있다.
사랑도 때가 있고 미움도 때가 있다. 기쁨도 때가 있고 슬픔도 때가 있다. 성공도 때가  있고 실패도 때가 있다. 아픈 것도 때가 있고, 낳는 것도 때가 있다. 축복도 때가 있고 저주도 때가 있다. 성장도 때가 있고 좌절도 때가 있다. 우리는 때를 떠나 살수 없다. 때 앞에 겸손하고 굽혀야 한다. 겸손하고 굽히면 행복을 넘어 환희와 평화가 온다.
굽힘은 다섯째로 정치인에게도 필요하다. 우리의 정치인들은 굽힘의 자세가 부족하기 때문에 존경을 받지 못한다. 정치인이 존경을 받기 위해서는 패하거나, 불리할 때  깨끗하게 승복하는 굽힘의 자세가 필요하다.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앨 고어는 부시2세에게 유권자 수에서는 100만 이상의 차이로 앞섰으나 선거인단 수에서 7표 차이로 뒤졌는데 이것 또한 문제가 있어 결국 대심원 판결에서 부시 2세가 대통령 당선자로 판결이 났다. 앨 고어는 이 판결에 깨끗하게 굽혀 상대방에게 축하의 악수와 포옹을 해 주는 아름다운 자세를 보여 주어 모든 사람들로 부터 존경을 받았다. 200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초반에 강세를 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은 후반에 바락 오바마에게 뒤지게 되자 끝까지 경선을 치르지 않고 슬기롭게 굽혔다.
타임지는 이런 슬기로운 굽힘(graceful surrender)이 힐러리 클린턴의 차기 대통령 선거에 입지를 강화했다고 했다. 힐러리는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여성 부문에서 지금까지 12년 연속 1위를 차지했고, 모두 합쳐서 18번째 1위를 차지했다.
이같이 힐러리는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여성으로 2016년 대선에서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당선이 유력시 되는 인물이다. 2016년 미국의 대선은 여러 가지 여건으로 보아 정치적인 풍토도 힐러리에게 매우 유리하다고 한다.
4. 전쟁과 굽힘
전쟁은 승자와 패자가 확연히 구별된다. 전쟁에서 굽힌다는 것은 항복을 의미한다. 항복은 언제나 부정적이며 굴욕적이다. 전쟁에서 항복은 항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징벌과 보복이 뒤 따르기 때문에 부정적이며 굴욕적일 수밖에 없다. 노예의 역사를 보아도 노예는 노예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전쟁에서 패했기 때문에 노예 신분으로 전락한 것이다.
한국역사 하면 누구나 삼천궁녀가 떠 올린다. 왜 3천명이나 되는 궁녀가 백마강에서 빠져 죽었을까?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전쟁은 언제 어디서나 보복과 징벌이 따르기 때문에 부정적이며 굴욕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하나의 예외가 있다. 그것이 미국의 남북전쟁(1861-65)이다.
남북전쟁에서 양측은 막대한 희생자를 냈으면서도 승자인 북부군은 패자인 남부군에 일체의 보복을 하지 않았다. 북부의 울리시스 그랜트 장군은 1865년 4월9일 남부의 로버트 리 장군의 항복을 슬기롭게 받아들임으로 끝이 났다.
그랜트 장군은 그 후 곧 미국역사상 최초로 4성 장군을 거쳐 18대 대통령(1869-77)을 역임했다. 로버트 리 장군은 대학총장이 됐고 강대국의 흥망이란 책을 저술했다. 남북 전쟁에서 희생된 사망자수는 62만 명에 달했다. 이는 당시 모든 군인 적령자(20-45세) 11명 가운데 1명에 해당되는 엄청난 숫자였다. 전쟁의 희생자 가운데 북부군의 희생자가 74퍼센트로 남부군보다 훨씬 많았다.  

 

◇ 필자

 

이상철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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