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일보칼럼] 식사와 행복 <1>
[현대일보칼럼] 식사와 행복 <1>
  • 이상철
  • 승인 2013.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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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살기위해 먹는 가 혹은 먹기 위해 사는가? 이런 질문에는 개인의 철학과 문화적인 특성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살기위해 먹는다고 답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물론 여기에 정답은 없다. 어느 것을 택하든 자유이며 어느 것도 완전한 해답은 될 수 없다.
하지만 어느 것을 택하느냐에 따라 크게는 한나라의 음식문화발전과 작게는 개인의 행복지수는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개인의 특성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한국의 음식문화에 대한 전통과 현실은 먹기 위해 사는 문화가 아니라 살기위해 먹는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내면적으로는 먹기 위해 산다고 생각하고 느끼면서도 외면적으로 누가 물으면 먹기 위해 산다고 답하기보다 살기위해 답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문화적 동물이기 때문에 문화적인 제약 즉 남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화적 제약이란 우리는 전통적으로 먹는 것(to eat)은 즐기고 생각을 나누고 대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기보다 살기위해, 굶지 않기 위해, 죽지 않기 먹는다는 문화가 지배해 왔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가 지배하는 한국과 같은 사회에서는 음식은 즐기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살기위해 먹기 때문에 음식문화가 제대로 발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개인의 만족과 행복지수도 낮을 수밖에 없다.
먹는 것은 단순히 먹는 행위에 그쳐서는 안 된다. 모든 창조적인 발전과 문화 그리고 사상은 식탁주변에서 나누는 대화에서 출발한다는 말과 같이 식탁은 단순히 먹는 장소가 아니라 대화를 나누는 장소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음식문화는 없거나 유아기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하면 누구나 문화를 연상한다. 이와 관련해 프랑스인은 하루에 먹는데 미국인 보다 1시간이 더 많은 2시간 25분 이상을 보낸다고 한다.
그러면 한국의 음식문화를 어떻게 하면발전 시킬 수 있을까? 
독일의 정신분석학자인 에릭 프롬은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 1956) 이란 저서에서 사랑은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답게 사랑을 하기 위해서 사랑을 예술(art)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사랑이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지식(knowledge)과 노력(effort) 그리고 헌신(devotion)과 인내(patience)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한국의 음식문화 발전을 위해 먹는 기술(The Art of Eating)을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시 말해 한국 음식문화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우선, 음식과 먹는 것에 대한 지식과 노력이 필요하고 나아가 헌신과 인내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제안을 하는 이유는 한국의 음식문화를 개선하지 않고는 국가의 품격을 높일 수 없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위대한 창의력과 사상을 발전시킬 수 없음은 물론 개인의 만족과 행복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음식문화의 개선은 한 국가의 품격을 높이는 중요 외교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한 조간지(2013)에 보도된 내용을 보기로 하겠다.
미 국무부(외교부)는 유명 요리사 80명을 국가요리사(state chef)선정한다. 이들은 미국국기와 국무부 문장이 수놓인 검정색 요리 복을 입고 국가 행사 때 내 놓을 음식을 만들거나 해외에 파견돼 미국 문화를 알리고 미국 이미지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힐러리 국무장관은 지난 9월(2012) 국가요리사 임명장 수여행사에서 요리는 가장 오래된 외교수단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국무장관 자격으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상대국 장관들과 나눈 가장 의미 있는 대화는 식사를 하면서 나눈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또한 음식을 나눔으로써 우리는 장벽을 뛰어넘어 서로 간에 다리를 놓을 수 있다고 했다.
음식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선 나의 체험적인 것을 들어보기로 하겠다. 20세기 세계 최고의 언론인에 속하는 뉴욕타임스의 제임스 레스턴은 이런 말을 했다.
나의 아내는 나와 결혼을 했을 뿐 아니라(married) 나를 교육시켰다(educated)고 했다.  교육시켰다는 말은 식사예법을 포함해 인간답게 사는 법을 가르친 것을 의미한다.
나 자신을 회상해 보아도 만일 아내의 교육과 가르침이 없었다면 현재의 내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뒤 늦게 미국의 미네소타 대학에서 학위(38세)를 마치던 1979년 그곳의 한 큰 종합병원에서 정식 간호사(registered nurse)로 근무하던 아내를 만나서  그 곳에서 결혼했다.
결혼 후 하와이로 이주해 동서문화센터 연구원으로 근무 할 때였다. 어느 주말에 윌로우 라는 분위기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식사 후 아내는 정색을 하면서 당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박사학위도 땄고 모든 것을 알 만한 사람이 식사예절(table manner)은 형편없다고 핀잔을 주었다.
나는 사실 당시만 해도 식사는 그냥 먹는 것이지 무슨 식사예법이나 매너가 있는 줄도 몰랐다.
인생은 포스트 대학원 코스라고 한 것 같이 만일 아내가 일러 주지 않았다면 70세가 지난 지금 까지도 남이 보기에 야만인같이 식사를 하고 있을 것을 상상하면 얼마나 자신이 부끄럽고 아내가 고마운지 모르겠다.
우리 교육은 출세와 성공을 위한 지식만을 강조해왔기 때문에 지식인에 걸 맞는 교양이나 매너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매너는 타인에 대한 예의이며 에티켓이다.
테이블 매너 즉, 식사예법은 글로벌 사회에서 누구나 지켜야 할 미덕이자 의무이다.                            
                        

◇ 필자

 

이상철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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