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일보칼럼] 반응과 행복 <3>
[현대일보칼럼] 반응과 행복 <3>
  • 이상철
  • 승인 2013.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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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응과 행복 <3>

한국인의 경쟁은 일류대학을 나온 후 사회에서도 계속된다. 한국인은 이같이 평생을 경쟁하며 평생을 비교하며 산다. 이런 이기주의 문화에서는 남에 대한 배려가 있을 수 없다.
남에 대한 배려란 상대방의 입장에서 자신을 보는 것을 말한다. 상점에서 점원의 표정이 밝지 못하거나 불친절 하면 바로 분노의 반응을 보이기보다 점원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분노는 타인이나 외적 요인에 의해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 나 자신이 분노하기로 작정하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나를 분노하게 할 수 없다.
나 자신이 비참해 지기를 원하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나를 비참하게 할 수 없다. 
내가 노하고 내가 비참해 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이 노하고 나의 마음이 비참해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묵상이 필요하다. 묵상은 마음을 가라 안게 해 생각을 조절하고 몸에 활력을 찾게 한다.
한국의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치고 층간 소음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문제는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바로 밑층에는 몇 년 전 개를 키우는 사람이 이사를 왔다. 이 개는 시도 때도 없이 자정이 지나도 짓곤 한다. 몇 번 찾아가 주지도 시켰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개가 짖을 때 남도 이렇게 열 받는데 주인은 더 열 받겠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가라 않기 시작했다.
그리고 개 주인에게 주지를 시켜도 소용이 없을 때 열을 내기보다 체념을 하게 되면 의외로 적응을 빨리하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어렵거나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처 할때 체념을 해 그대로 받아드리면 생존본능에 의해 곧 적응을 하게 된다.
우리는 아직도 아랫집 개짓는 소리와 함께 산다. 그러나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체념가운데 사니까 자정이 지나 개 짖는 소리에 잠이 깨어도 열도 받지 않고 견딜 만하다.
그리고 우리 아파트 위층에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형제가 살았다. 이 아이들은 특히 부모가 집을 비우면 유난히 쾅쾅거리며 뛰고 장난을 치는 것 같았다.
저녁이면 이 아이들이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면서 서로 장난을 치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주의를 주기도 했으나 잘 고쳐지지 않았다.
하지만 몇 해가 지나 이 아이들이 고등하교엘 가니까 자연히 문제가 해결 됐다. 참고 인내하고 적응하니까 문제는 자연히 해결됐다. 
부부간의 행복을 위해서는 상대의 제의(bids)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반응해야 한다. 부부간 서로의 제의에 적극적으로 반응할수록 결혼생활은 그만큼 더 행복해 진다.
행복한 부부일수록 행복하지 못한 부부보다 시간당 서로의 관심을 위한 제의 회 수가 많을 뿐 아니라 긍정적인 반응도 더 많다고 한다.
한 조사에 의하면 행복한 남편이 부인의 제의에 무심한 반응을 보이는 비율은 19%에 달하고 행복한 부인이 남편의 제의를 무시하는 비율은 14%로 비교적 저조하지만 결혼생활이 불행하면 남편은 부인의 제의에 무심한 반응을 보이는 비율이 82%에 달하고 부인이 남편의 제의에 무심한 반응을 보이는 비율은 50%로 매우 높은 편이다.
먼저 부인에 대한 남편의 올바른 반응은 부인과 마주 앉아서, 들어주고 맞장구를 쳐 주면 된다. 부인이 바라는 것은 이해와 동의이지 해결이 아니다.
부모의 아이에 대한 올바른 반응도 중요하다. 부모가 아이의 관심 끌기에 무심하게 반응하면 이런 아이는 사회생활과 학교 성적 그리고 건강에도 문제가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사람들은 상대방의 제의에 보통 긍정적으로 반응하거나 부정적으로 반응한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전혀 반응을 하지 않거나 동문서답을 하는 경우도 있다.
“오늘 하루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을 때 전혀 못들은 척 하고 반응을 하지 않거나, 목수를 불렀느냐고 전혀 상관이 없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같이 의도적으로 무심하거나 무시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만 독서나 텔레비전 시청, 이메일과 같은 일에 정신이 팔려 제대로 반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유가 어디에 있든지 자신의 제의에 대한 상대방의 반응이 무심하거나 부정적이면 자신은 모멸감과 좌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상황이라도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이 엇갈리는 경우도 많다.
1900년대 초 미국의 한 구두(shoes)회사에서 두 명의 세일즈맨을 현지 시장 조사차 아프리카에 보낸 일이 있었다.
이 두 신발 상인은 보스에게 전혀 상반된 반응의 전신을 보냈다. 한 사람은 아프리카인들은 구두를 전혀 신지 않기 때문에 사정은 아주 절망적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은 아프리카 인들은 아직 구두를 신지 않고 있기 때문에 기회는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사람들은 보통 하루에 75번 이상 불평을 하고 화를 내고 짜증을 내 불행을 느끼곤 한다. 이는 같은 사건이나 사실에 직면했을 때 아주 상반된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한 선생은 자신의 반 학생, 45명이 너무 많다고 불평을 하면서 불행하다고 느끼지만 또 다른 선생은 이런 정도의 학생 수는 아주 적정수준이라고 하면서 즐겁고 행복해 한다.
눈이 오고 얼음이 얼면 어린 아이들은 매우 기뻐서 날 뛰지만 노인들은 넘어질까 염려해 날씨를 탓하거나 불평을 한다.
자기 집의 수돗물이 새면 자신이 직접 고쳐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걱정을 하고 불안해 하지만 공공장소에서 수돗물이 새는 것을 보면 무관심하고 태평하게 된다.
자신의 책상에 있는 스탠드의 전구가 나갈 때 한 사람은 전구가 왜 이리 자주 망가져 하며 불평을 하지만 다른 사람은 전구의 수명이 오래 간 것에  감사하며 행복해 한다.

◇ 필자

 

이상철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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