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일보칼럼] 반응과 행복 <2>
[현대일보칼럼] 반응과 행복 <2>
  • 이상철
  • 승인 2013.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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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전쟁 당시 나치 수용소의 한 생존자인 빅토르 프랑켈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힘에 의해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도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자유는 빼앗길 수 없다는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이런 영적인 자유(spiritual freedom)로 인해 자신은 극한 적인 상황에서도 품위(human dignity)를 유지하고 삶에 대한 의미와 목적을 발견해 평온과 행복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같이 인간은 고통과 극한적인 상황에서도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행복해 질수 있다.
그가 후에 쓴 의미중심의 책(인간의 의미 추구)은 24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적으로 1천2백만 부나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나 사건에 순간적인 반응을 잘 못해 행복이 아니라 불행을 넘어 비극을 불러오는 사례도 많다.
한국에서 음력설은 모든 가족이 함께 모여 기쁨과 즐거움을 나누는 행복한 날이다.
그러나 이번 설(2013. 2.10)은 순간적인 반응의 잘못으로 행복이 아니라 불행하고 비극적인 사건이 잇 딸은 해였다. 
경북 상주에서는 설을 맞아 고향집을 방문한 아들이 어머니가 꾸짖는 다고 어머니를 살해했다.
아들인 장모(37세 회사원, 미혼)는 어머니 김모(61)가 밥을 왜 그렇게 쩝쩝대며 먹느냐며 핀잔을 주자 어머니를 목 졸라 죽였다고 했다.
서울 면목동의 한 아파트에서는 설을 맞아 박모(45)는 위층의 부모를 찾아온 김모(33)와 동생(31)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다.
박모는 설 연후 첫 날인 2월9일 층간소음으로 시끄러우니 조용히 해 달라고 항의하다 시비 끝에 아파트 앞 화단에서 김씨 형제를 칼로 찔러 살해했다.
그 외에도 1월 23일 대전에서는 27세 남성이 같은 빌라에 사는 여성(23)이 자신을 못 생겼다고 말하는 것에 격분해 그 여성을 칼로 찔러 죽였다. 이 남성은 외모 때문에 취업도 못하고 있는데 외모를 무시하는 말에 화가 나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2월 12일 서울 양천 경찰서는 층간 소음문제로 10년간 다투던 위층 집에 불을 질러 홍모(67)등 일가족 6명을 다치게 한 혐의로 박모(49)를 구속했다.
설 다음날 김모(41)는 아버지 집에서 취직도 못하고 방구석에만 있는 한심한 놈이라고 자신을 꾸중한 아버지(71)를 발로 차 넘어뜨린 뒤 밟아 숨지게 했다.
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순간의 잘못된 반응에 의해 우발적인 살인을 한 혐의자는 2000년 306명 이후 해마다 늘어 2010년에는 465명으로 증가했다고 했다.
이런 우발적인 반응에 대한 대처 방안은 무엇인가? 비교와 경쟁이 심하면 심할수록 분노지수는 증가하게 마련이다.
화가 났을 때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느리게 말하고 느리게 화내고 느리게 반응하는 것이 좋다.
즉시 반응을 하지 않고 10번만 심호흡을 하면 분노를 조절할 수 있다. 15초만 지나면 분노의 호르몬이 대부분 없어지기 때문에 그 순간을 기다리면 된 다고 한다.
화나고 열 받는 말을 들었을  때 바로 문자나 이메일, 답장을 보내지 않는 것이 좋다. 어제의 흑이 오늘의 백으로 변할 수 있으므로, 일단 잠을 자고 난 후에 답신을 보내는 것이 가장 바람 직 하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미국인은 남에게 도움이 되라고 가르치고 일본인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고 가르치지만 한국인은 결코 남에게 지지 말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아이가 밖에 나가 매를 맞고 돌아오면 아이를 위로하고 정황을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왜 바보같이 매만 맞고 돌아오느냐고 야단부터 친다.
유대인이 세계적으로 뛰어난 이유는 철저한 가정교육에 있다. 유대인은 아주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영성교육(토라) 과 지혜교육(탈무드) 그리고 인성교육(대가족)을 철저하게 받는다.
유대인은 가정에서 대화하는 법에서 부터 식사예절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 등을 가르친다. 유대인의 최대 목표는 가변적인 지식에 속하는 노벨상이 아니라 토라와 탈무드 교육이다.
한국인에게는 대화나 남에 대한 배려가 별로 없기 때문에 가정교육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한국인의 최대 목표는 오로지 치열한 경쟁을 물리치고 일류대학에 입학하는 것이다.    

 

◇ 필자

 

이상철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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