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철교수의 행복메세지24
이상철교수의 행복메세지24
  • 이상철
  • 승인 2011.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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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남들의 인정을
받기를 원하며 인정과 칭찬
받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육체와 영혼은 하나이고 같다. 성경에 사람이 이 세상을 다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마태16:26)고 할 때 여기서 목숨은 곧 영혼(soul)을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영혼에는 욕구본능(desiring), 합리본능(rational), 그리고 인정(recogniaion)을 받기위한 본능이 있다고 하면서 이 세 요인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역사를 발전시키는 동인(motive)은 자신의 신분을 인정받기 위한 본능이라고 한다. 인정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가치와 권위를 인정해 주기 바라는 신분인정 욕구를 말한다. 흔히 역사에서 왕자끼리 서로 싸우는 것은 영토나 금전에 대한 욕구가 아니라 자신의 영역이나 주권을 인정받기 위한 욕구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남들의 인정을 받기를 원하며 인정과 칭찬을 받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사람들은 또한 누구나 남들의 인정을 받고 남들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과시하기도 한다.
칸트는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과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하나이며 같다고 한다. 이런 면에서 우리 인간은 누구나 존경과 존엄성을 인정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합리적인 존재(raional beings)이다.
한국이 5천년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세계적인 인물을 배출하지 못한 것은 인물을 키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물을 키운다는 것은 사람의 생각을 존중해주고 인정해 주는 것이다. 인물은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인물을 존중해 주고 인정해 주는 데 소홀했기 때문에 어떤 분야에서든지 세계적으로 존경을 받고 인정을 받는 인물다운 인물이 없다.
우리는 어린이들을 칭잔할 대도 그들의 재능(intelligence)보다 그들의 노력(efforts)에 대해 인정과 칭찬을 해야하고 질문을 할 때도 몇 점을 받았느냐  무슨 상을 탔느냐 묻지말고 무엇을 배웠느냐, 무슨 질문을 몇개나 했느냐고 물어봐야 한다.
한국인과 유대인은 이 지구상에서 다 같이 가장 교육열이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런데 한국인은 노벨상(과학) 수상자를 한명도 배출하지 못했고 유대인의 노벨상 수상자는 전체의 30퍼센트를 넘는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한국인은 학점과 성적에만 관심이 있느느 반면 유대인은 무엇을 배웠으며 무슨 질문을 했느냐에 보다 관심이 있다.
헤로도토스가 역사의 아버지(father of hostory)로 불리는 것도 그가 끊임없는 질문(inquiry)을 했기 때문이다. 헤로도토스 이전의 역사는 우리와 같이 단순한 과거의 보도나 기록에 그쳤다. 그리스어로 역사(historie)란 말은 바로 의문(inquiry)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헤로도토스의 위대성은 그의 끊임없는 호기심(boundless curiosity)에서 나왔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탐구하거나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헤로도토스의 질문에 대한 정신(inquiring spirit)이 그를 위대하게 만들었다. 헤로도토스는 그리스가 마라톤전쟁에서 무적의 페르시아 군에 승리를 거둔 것도 우리식으로 결과나 장군만을 미화한것이 아니라 자유인과 노예의 싸움에서 자유인이 이겼다고 했다.
헤로도토스는 아무리 병력이 많고 화력이 막강하더라도 페르시아 군 같이 자유가 없으면 싸움을 쉽게 포기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자유가 보장되는 시민의 군대는 주인의식이 강하고 싸움에 이기면 보상이 돌아오고 명예를 무엇보다 중시하기 때문에 더욱 용감해지고 끝까지 싸운다고 한다. 동구권(1989)과 소련(1991)이 자동 붕괴된 것도 화력과 병력의 부적이 아니라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경과 인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교육현실을 보면 학교에서 수석을 하고 우등상을 탄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성공을 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교육의 목적이 무엇을 배우고 의문이 생기면 이를 해결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학점과 성적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만점을 맞아도 1년만 지나면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자신이 의문을 갖고 문제를 제기해 이를 해결하면 평생 남을 수 있다. 우리는 올바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우리교육의 문제는 가르치는 사람들이 결코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단순히 정답만을 제시하는데 있다. 점수와 성적에 치중하는 시험선수가 크게 성공하거나 노벨상을 탈 수 없는 이유는 정답이 있다는 것은 이미 있는 지식이나 정보를 소비하는(consumption of the old knowled
ge)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벨상을 탈 정도로 크게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지식을 근거로 새로운 지식의 창조(creation of the new know
ledge)나 발명을 해 세계적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때 가능하다.
우리의 경제구조가 핵심부품을 수입해서 가공해 다시 수출하는 것 같이 우리의 지적 현실도 외국에서 창조된 지식을 수입해 소비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자신이 새로운 지식을 창조해 널리 세계에 수출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끊임없는 질문과 지적 호기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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