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일보 칼럼] 곽복산, 한국 언론과 언론학의 개척자 (8)
[현대일보 칼럼] 곽복산, 한국 언론과 언론학의 개척자 (8)
  • 이상철
  • 승인 2019.03.17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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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나의 스승, 곽복산

1. 스승과 멘토르 그리고 선생

스승과 유사한 말로는 선생, 멘토르가 있다. 일반적으로 선생하면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을 교사라고도 한다. 

그러나 선생은 이보다 더 폭넓게 쓰인다. 나는 대학에서 30년 가까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했기 때문에 대학의 교수가 된 제자들이 많다.        

대학 교수가 된 제자들이 나를 부를 때 대부분의 제자들은 나를“교수님”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몇몇 제자들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처음에는 의아하게 들렸으나 생각해 보니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고 더 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제자들이 학생일 때는 당연히 교수님이라고 불렀지만 자신이 교수가 되어 스승을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오히려 부담스러워 선생님이라고 부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보다 존경한다는 뜻에서 선생님이라고 부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이라는 말은 이같이 일상적으로 폭넓게 쓰이고 상대방에 대한 존경의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직접 배우지 안았어도 그리고 잘 모르더라도 자신보다 나이가 많고 학식이 있거나 학식이 없어도 위 사람을 높이는 뜻에서 사용된다. 

물론 잘 아는 사이라면 위 사람이 아래 사람을 부를 때 선생이라는 말을 쓸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상대방으로부터 선생또는 선생님이라는 말을 들을 때 기분나빠 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된다. 

스승과 멘토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선생과는 차이가 있다. 스승이란 말도 초등학교 선생(교사)으로부터 대학의 교수에 이르기 까지 폭넓게 쓰인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쓰이는 선생과는 달리 스승이나 멘토르는, 스승이나 멘토르와 학생(멘티)간의 학문, 교육 교양, 훈련 등을 중심으로 맺어진 밀접한 관계를 말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홀로, 성공을 하거나 위대해 질수 없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을 보면 예외없이 훌륭한 스승겸 멘토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알렉산더 대왕은 기원전 3세기에 활동한 인물이다. 그는 페르시아와 이집트 그리고 인도 접경까지 점령해 고대 그리스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한 인물이다. 그는 그리고 역사상 최초로 세계적인 명사와 영웅의 칭호를 받은 인물이다. 그는 그리스 뿐 아니라 점령지에서도 훌륭한 통치(good rule)를 했기 때문에 후세의 왕과 군주들에게도 롤 모델이 됐다. 

이런 알렉산더 대왕의 인격형성과 훌륭한 통치는 멘토르 겸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지도와 조언 덕분이었다.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자인 알렉산더에게 그리스의 전통과 예절, 문화 그리고 그리스 신화 등을 철저하게 가르쳤다. 알렉산더는 호메로스가 쓴 고대 그리스 문학의 가장 오래된 서사시인 알리아스(Illiad)에 매료돼 이 책을 자신의 베개믿에 깔고 잠을 잔 것으로 유명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알렉산더에게 이런 영향을 미칠수 있었던 것은 그의 스승이었던 플라톤의 지도와 조언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한 플라톤이 유명해 질수 있던 것도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자연주의 철학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불복종사상(civil disobedience)은 20세기 간디, 넬슨 만델라, 마틴 루터 킹, 톨스토이 , 헤밍웨이 그리고 한국의 법정스님 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뿐 아니라 이 사상은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회운동가들에 영향을 미쳤고 특히 21세에는 수많은 환경운동가들에도 영향을 미쳤다. 

법정스님은 한국 불교의 승려이자 수필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법정의 무소유와 일일 일식 주의는 소로의 영향력 때문이다. 소로는 삶의 단순함을 강조하면서 식사도 하루 세 번이 아니라 필요하면 한번으로 줄이라고 했다.

이런 소로에 있어서 인생의 전환점은 그의 멘토르인 랄프 월도 에머슨을 만나면서부터 였다. 에머슨은 소로와 같이 콩코드에서 출생했고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다. 17년 연상인 에머슨은 25년간 소로를 이웃으로, 작가로 그리고 자신의 집 거주자(resident)로 알고 지냈다고 했다. 

25년 간이란 소로가 1837년 멘토르인 에머슨을 만날 때부터 그가 45세로 사망(1817-1862)할 때 까지를 말한다.    

아인슈타인의 어려서 멘토르 겸 스승은 맥스 탈무드였다. 맥스는 10살인 아인슈타인에게 수학과 과학 그리고 철학을 가르쳤다. 맥스는 6년간 아인슈타인을 지도하면서 적어도 한 주에 한 번은 아인슈타인 가족과 식사를 같이 하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조언을 하기도 했다. 

이같이 우리는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도움과 조언이 없이는 혼자 성공을 하거나 위대해 질 수 없다. 

헨리 포드의 자동차 발명(1908)은 그의 멘토르인 발명왕 에디슨 때문에 가능했다. 포드(1863년 출생)가 16세 연상인 에디슨(1847)을 만나 자신감과 격려를 통해 자동차를 발명하기 전 까지는 어느 누구도 그를 격려해 주지 않았다. 

그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포드의 구상이 좋은 아이디어라고 발한 적이 없다. 포드는 거듭되는 부정적인 반응 때문에 자동차에 대한 꿈을  접을 생각까지 했다. 

이런 절망적인 상태에 빠졌던 포드는 에디슨을 만나 격려와 확신에 찬 칭찬의 말을 들은 것이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됐다. 에디슨은 포드의 자동차 발명에 대한 구상을 듣는 순간 그를 격려했을 뿐 아니라 그에게 확신과 신념을 불어넣어 주었다. 

에디슨은 포드의 자동차에 대한 구상을 듣자마자 그의 얼굴은 환하게 빛났고  주먹으로 탁상을 치며“당신은 이미 해냈다(you've got it)"고 격려와 신념을 불어넣어 주었다. 

이후 에디슨과 포드의 우정과 친밀한 관계는 평생 지속됐다. 1885년 에디슨은 플로리다 주에 집을 사서 겨울에는 거기서 지냈다. 이후 포드는 에디슨 집 바로 옆에 집을 사서 살면서 평생토록 서로 우정을 나누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 필자

이상철

중앙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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