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북부보훈지청 보훈과
지난 6월 23일에 방송된 tvn '백패커2'에서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이야기가 전파를 탔다. 국가보훈부가 제작 지원을 맡은 이번 기획은 호국 보훈의 달과 한국전쟁 발발 74주년을 기념하는 호국 보훈 정신 계승 사업의 일환이었다.
잊고 지냈던 호국 영웅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고, 70여 년간 잠들어 있던 국군과 유엔군의 유해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 조국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는지 알게 된 기회였다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렇듯 매년 6월이 되면 이 땅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국내외의 영웅들을 기억하려는 시도가 사회 각계각층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달력을 넘겨 7월이 되면, 국군과 유엔군 참전 용사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는 기념일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각자의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연초마다 달력을 넘겨보며 공휴일과 명절을 확인하는 그 과정에서, 단 한 순간만이라도 시선이 머물렀으면 하는 날짜가 있다. 7월 27일, 유엔군 참전의 날이다.
유엔군 참전의 날은 6·25전쟁의 정전일로, 2013년부터 기념일로 지정되어 해마다 정부 차원의 기념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국가보훈부는 올해 7월 27일에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함께, 모두의 미래(Together for Our Tomorrow)’라는 주제로 ‘6·25 전쟁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을 거행하여 참전용사 및 참전국의 공로에 감사를 표하는 계기를 마련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18일에는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이 유엔 참전용사 후손을 포함해 한국에서 심장병 수술을 받은 에티오피아 어린이들을 위문하고 격려했다. 에티오피아는 6·25전쟁 당시 아프리카 대륙에서 지상군을 파견한 유일한 나라로, 국가보훈부는 에티오피아 생존 참전용사에게 매월 영예금을 지원하고 후손 350여 명에게 매년 장학금을 수여하는 등의 보훈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기고문을 작성하며, 에티오피아 이외에도 또 다른 참전국 중 하나인 튀르키예가 떠올랐다. 작년 한 방송에서 한국을 처음 방문한 튀르키예인들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이 여행객들은, 새벽부터 일어나 와이셔츠를 곱게 다림질하고 넥타이를 매며 “형제를 만나러 부산에 간다”라고 하였다. 어느 곳으로 가는지 단박에 예상할 수 있었다. ‘형제, 부산, 튀르키예’라는 키워드가 이끈 곳은 UN기념공원이었고, 친구들은 수많은 용사들의 묘지 앞에 서서 눈물을 흘리며 그들의 숭고한 희생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를, 그리고 그것이 한국과 튀르키예를 형제로 이어주었음을 서로에게 다독이듯이 이야기하였다. 그 진심 어린 말들과 다정함에, 으레 방송과 카메라라는 매체가 빚어내는 약간의 꾸밈과 가식은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한국에 여행 오면 반드시 방문하고 싶었다던 UN기념공원, 이 곳이 존재하는 이유를 가장 진정성 있는 방법으로 우리에게 알려주는 듯했다.
얼마 전, 종로구 행촌동에 위치한 ‘희망의 궁전’이라는 뜻을 가진 ‘딜쿠샤’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미국 AP통신 특파원으로 일하던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가 부인 메리 테일러와 함께 살던 집이다. 이 부부는 고초를 겪으면서도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해 운명을 같이했고, 기미독립선언서를 해외 언론사에 보내 3·1운동을 전 세계에 알리는 등의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이 집의 바로 옆에는 권율 장군의 집터가 있다. 16세기의 조선을 지켰던 호국의 명장이 살았던 집터 옆에 20세기의 한국을 지키던 외국인들의 집이 들어섰다. 그리고 그 집은 6·25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살아남아 21세기의 우리에게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나는 역사를 관통하는 이 풍경을 보며, 그 모습이 국군과 유엔군의 모습과 일맥상통한다고 여겼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 소중한 젊은 날을 희생했던 우리 군과, 이역만리 먼 땅의 평화를 위해 기꺼이 삶을 내놓은 감히 짐작하기도 어려운 마음을 가졌던 무려 63개국의 군인들. 그들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그 첫걸음은, 누군가는 빨간 날이 없어 우울한 달이라는 7월의 단 하루라도 70여 년 전의 영웅들을 추모하며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