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소방관, 그들에게 느리게 산다는 것이란
[투고]소방관, 그들에게 느리게 산다는 것이란
  • 홍진영
  • 승인 2010.01.12 00:00
  • icon 조회수 6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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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이란 직업을 선택한지 30여년이 지났다. 지금 회고해 보면 하루 하루 바쁜 일상의 연속이였다. 화재, 구조 및 구급현장. 시민이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언제, 어디든지 달려갔다. 우리 소방관은 이렇게 늘 바쁘게 살아간다. 신속한 출동, 빠른 화재진압. 이런 일상이 우리 마음속에 조급함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런 조급함은 불행하게도 안전사고라는 슬픔으로 우리에게 다시 돌아온다.
몇 년전,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라는 한권의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작가는 책을 통해 바쁘게 움직이는 생활에서 결연히 벗어날 수 있는 지혜를 전하고 느리게 산다는 것은 부드럽고 우아하고 배려 깊은 삶의 방식임을 말하고 있다. 생과 사가 오가는 화재현장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소방관은 조급함이 이미 몸에 베여 있다. 언제나 빨리 움직이고 신속하게 움직인다. 또한 우리 마음 역시 그러하다. 이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피에르 쌍소가 말하는 느림의 삶이 꼭 필요한 것 같다. 마음의 여유와 조급함이 없는 움직임. 우리 소방관에게는 화재현장에서 살아남는 중요한 키포인트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하실 화재 현장에서 다른 대원과 떨어져 혼자 남아있다고 상상을 해보자. 설상가상으로 렌턴는 희미해져 간다. 공기호흡기의 게이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칠흑같은 어두움 속에서 이제 죽음을 기다려야 하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상황에서 패닉에 빠지고, 가쁜 호흡으로 공기를 더욱 빨리 소모해 스스로 죽음의 길로 걸어갈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얘기한 느림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대원이라면 그 상황에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상황을 판단해 삶의 길로 걸어갈 것이다.
‘서두름은 악마가 발명했다’라는 터키 속담이 있다. 반면에 ‘천상의 고요’라는 말도 있다. 조급한 삶을 살아 악마를 만날 것인가? 느림의 삶을 살아 천사를 만날 것인가? 어떤 것을 선택하든 그것은 우리 자신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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