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통해 본 행복과 민주주의
미국 대선 통해 본 행복과 민주주의
  • 현대일보
  • 승인 2023.04.14 19:35
  • icon 조회수 3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닉슨은 1974년 8월 5월 현직 대통령으로는 역사상 최초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의 위협 속에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1972년 6월 민주당 당사인 워터게이트를 침입한 3명의 침입자가 바로 닉슨의 지시로 저질러진 불법행위라는 사실이 워싱턴 포스트의 탐사보도(investigative reporting) 기자인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에 의해 밝혀지자 그는 탄핵의 위협속에 사임을 했다.  닉슨의 사임으로 2021년 현재, 미국의 46대 45명의 대통령 가운데 9명이 재임 중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사망하거나 임기 중 사임 (4명은 병사로, 4명은 피살로, 1명 자진 사퇴)했다.

닉슨의 사임으로 부통령인 포드(Gerald Ford)가 38대 대통령(1974-1977)에 취임했다. 그는 선거에 의해 당선되지 않은 채 부통령과 대통령을 지낸 유일한 인물이다. 포드는 취임 1개월 후(1974.9.8.) 닉슨에 대한 죄를 사면해 주어, 정치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포드는 1976년 선거에서 카터(Jimmy Carter, 39대, 1977-1981)에 패해 정권은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넘어갔다. 

카터는 에너지 부(Department of Energy)를 신설했고, 보건, 교육, 후생부(Department of Health, Education & Welfare)를 보건인간봉사부(Department of Health & Human Services)와 교육부(Department of Education)로 분리했다. 

카터는 1978년 중국과 정식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카터는 그리고 1979년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중재에 성공, 두 나라 사이의 관계를 정상화하는데 성공했다. 즉, 카터의 중재로 이스라엘의 베긴(Menachen Begin) 수상과 이집트의 사다트 (Anwar Sadat)는 워싱턴에서 역사적인 평화조약(Peace Treaty)에 서명했다. 카터는 그러나 1979년 11월 이란의 호메이니가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 직원을 감금해 정치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가운데 치러진 1980년 선거에서 카터는 공화당의 레이건(Ronald Reagan, 40대, 1981-1989)에 패했다. 69세인 레이건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많은 나이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레이건 이전에 가장 많은 나이로 당선된 대통령은 9대인 해리슨으로 68세에 당선되었다.  

레이건은 온화하며 매사에 자신감을 보여 주었으며 간섭을 하지 않는 행정가 (hands-off administrator)로서 유능한 관리를 기용해 간섭을 받지 않고 처리하도록 했다. 레이건은 다년간 영화배우와 텔레비전 인사로 갈고 닦은 세련미 때문에 위대한 커뮤니케이터(great communicator)란 말을 듣기도 했다. 레이건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이후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으로서 1984년 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인 먼데일(Walter Mondale)을 누르고 대통령(1981-1989)에 재선되었다. 

    <다음주에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