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 명예교수
미국 역사상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26대, 공화, 1900년 42세로 승계) 다음으로 가장 젊은 대통령에 당선된 케네디(John F. Kennedy, 1960년 43세로 당선)는 취임 연설에서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기 전에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but ask what your can do for your country)“ 는 명언을 남겼다.
민주당 출신의 35대 대통령인 케네디는 뉴프론티어(New Frontier) 정책을 내세워 미국은 세계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어떤 대가도 치를 것이고, 어떤 책임도 감내 할 것이고, 어떤 어려움도 감내할 것이며 우방을 지원할 것을 천명했다. 케네디는 그리고 1961년 평화봉사단(Pe ace Corps)을 설치, 미국의 젊은 자원봉사자들을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에 파견해 기술과 글을 가르치게 했다. 그러나 케네디는 1963년 11월 22일 미국 대통령으로는 4번째 (16대 링컨, 20대 가필드, 26대 매킨리 다음)로 텍사스의 달라스에서 애석하게도 피살되었다.
케네디의 뒤를 이은 린든 존슨(Lyndon Johnson)은 36대 대통령이 되었고, 1964년 대선에서는 자력으로 대통령(1963-69)에 당선되었다. 존슨은 ”위대한 사회“를 주창해 연방정부가 질명과 가난을 퇴치하고 교육을 개선하며 인종차별을 종식 시킬 것을 공언했다. 같은 해 시민법(Civ il Rights Act)이 통과되어 모든 호텔, 식당, 상점 등 공공시설에서 흑백 차별이 금지되었고, 고용균등위원회(Equal Employ ment Opportunity Commis sion)가 설립되어 고용에서 인종차별을 금지했다. 존슨은 1965년 65세 이상 노인계층에 의료보험의 혜택을 주는 메디케어 법(medicare)과 저소득층에 의료보험 혜택을 주는 메디케이드 법(medicaid)을 통과 시켰다.
존슨 재임 시 베트남전쟁은 1964년 월맹군이 동킹 만의 미군에 대한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1965년 존슨이 월맹에 대한 공습을 시작한 이래 1966년 18만이던 미군이 1969년에는 54만 명으로 증가했고, 월남전에 참전한 미국인 병사는 모두 250만 명에 달했다. 공화당의 닉슨은 1968년 대선에서 월남전 종식을 약속하며 37대 대통령 (1969-1974)에 당선되었고, 1972년 대선에서도 재선되었다. 닉슨은 월남화정책(Vietnamization Policy)에 따라 1973년까지 2만5천 명에 달하는 모든 미군 병력을 철수시키고, 휴전협정(19 73.1)을 통해 미군을 60일 이내에 완전히 철수시켰다. 월남은 결국 미군이 철수한지 2년만인 1975년 4월, 월맹에 항복, 베트남은 공산화되고 말았다.
미군은 베트남전쟁에서 5만 8천 명이 사망했고 부상자 수는 15만 4,000 명에 달했다. 닉슨은 베트남에서 철수한데 이어 소련, 중공과 역사적인 대탕트(deten te)정책을 펴 관계를 개선하는데 주력했다. 닉슨은 1972년 2월 북경을 방문해, 중국과 관계를 정상화하는데 합의를 보았다. 양국 관계는 1979년 1월 카터(39대) 대통령 때 정상화되었다.
<다음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