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연령대로 본 건강과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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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일보
  • 승인 2023.01.06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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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철 중앙대 명예교수

 

제퍼슨에 이어 4대 대통령에 취임한 같은 반 연방당 출신의 메디슨 (James Madison, 1809-1817)은 유럽과의 관계에 있어서 제퍼슨의 정책을 고수했다. 매디슨은 무역 금지법을 폐지하는 대신 영국, 프랑스와 무역을 금지하는 비 교역법(Non-Intercou nrse Act, 1809.3.1.)을 제정했다. 매디슨 대통령은 1811년 2월 영국이 미국의 중립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영국과 무역 금지를 재개할 것을 천명했다.

미국이 영국과 전쟁을 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영국이 캐나다 점령과 이들의 미국 내 인디언들과의 결탁이었다. 미국의 팽창 정책은 효과적인 인디언들의 통제에 있었는데 인디언들은 캐나다에 있는 영국인들의 도움을 받아 인디언 통제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에 주전론자들은 캐나다의 영국인들이 인디언을 돕는 것을 막기 위해 영국과 전쟁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매디슨 대통령은 1812년 6월 1일 영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선전포고에서 매디슨은 영국이 미국의 해상중립권 (marine rights of neutral nations)을 준수하지 않았고, 미국의 선원과 상인을 강제징발 (impressment)했으며, 서부의 인디언을 선동해서 미국의 팽창 정책을 방해했다고 했다. 

영미전쟁 (1812.6.1.-1814. 12.24.) 당시 미국 인구는 700만이고 캐나다 인구는 50만 (다수가 프랑스인)에 불과했기 때문에 미국은 캐나다를 손쉽게 점령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미국의 캐나다 침공은 3면 공격을 폈으나 세 전선에서 모두 패했고 1812년 8월 15일에는 시카고가 함락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미 해군은 수적인 열세 (영국 97척, 미국 17척)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승리해 영국을 당혹하게 했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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