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빚진 건 하나도 없다. 자유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의무가 있어. 바로 자유가 없거나 잃게 생긴 사람들에게 그 자유를 전하고 지켜주는 거야. 자유 없는 북녘에 자유를 찾아주고 지키는 것은 이제 대한민국의 의무이다.” 한국전에서 오른쪽 팔과 다리를 잃었고, 지난 4월 별세한, 왼손 거수 경례로 잘 알려진 윌리엄 웨버 미국 육군 대령이 남긴 말이다.
미국 지상군은 한국에 도착한 1950년 7월1일부터 휴전까지 6.25전쟁 발발 후 약 10일간의 전투를 제외하고 모든 전투에 참전했고, 6.25전쟁이 발발할 당시 신생 독립국이었던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참전했으며, 미국, 영국에 이어 세 번째 지상군 참전국이기도 하다. 콜롬비아는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유일하게 참전한 국가로 ‘자유를 위해서 참전할 준비를 해야 한다’라며 한국의 침략 소식을 콜롬비아 대사가 전한지 48시간만에 전면적 군사지원 결정을 했다고 한다. 아프리카 대륙 국가 중에서 6.25전쟁에 참전한 국가는 에티오피아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다. 6.25전쟁 중 수 많은 전투에서 ‘자유의 의무’를 위한 16개 전투지원국 4만여명 유엔군의 피가 한반도를 적셨다.
경기도 연천은 1951년 4월부터 1953. 7월 휴전까지 전투지원국 16개국의 모든 군대가 전투를 수행한 유일한 지역이다. 불모고지 전투(미국, 프랑스, 네덜란드, 콜롬비아), 후크고지 전투(영국, 뉴질랜드), 폭찹고지 전투(미국, 태국), 고왕산 전투(캐나다), 마량산 전투(호주), 사미천 전투(미국 해병), 왕징면 교량폭격(남아공), 장승천 전투(튀르키예), 313고지 전투(그리스), 율동 전투(필리핀), 금굴산 전투(벨기에, 룩셈부르크), 요크고지 전투(에티오피아) 등이다.
불모고지(Old Baldy)는 연천 서북방 역곡천 남안에 위치한 275고지이며, 주변에 폭찹고지, 티본고지를 포함 대체로 200m 내외 고지군의 중앙에 위치한다. 동쪽으로는 철원평야, 남쪽으로는 연천과 한탄강 지역, 서쪽과 남쪽으로는 임진강 지역이다. 1952년 6월부터 8월, 약 2달 동안 불모고지 전투에서 미군은 중공군 1,300여명 사살하고, 451명이 전사 또는 부상을 당했고, 콜롬비아군은 6.25전쟁 단일전투에서 220여명이 전사, 부상, 실종을 당하는 등 가장 큰 희생을 입었으나 중공군 600여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후크(Hook)고지는 낮고 자그마한 지점이며, 사미천 지류와 평행을 이루면서 서쪽으로 뻗은 긴 갈고리 모양이다. 능선 정상에서는 사미천 주변 전체를 관측할 있었기 때문에 받드시 확보해야 할 중요한 거점이다. 4차례의 전투 중 백병전까지 전개됐던 2차 후크고지 전투에서 중공군 약 100여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으나, 영국군 100여명이 전사, 부상, 실종을 당했다.
고왕산(355고지) 아군에 대한 중공군의 집중포격으로 고지 전면에 설치된 철조망, 교통호, 엄폐호 등 모두 파괴되어 방어작전에 어려움과 대규모 병력을 동원한 중공군과의 직접 대결은 승산이 없다고 판단, 철수했다. 병력을 재집결한 캐나다군은 355고지를 향해 돌격, 백병전까지 벌여가며 고지 탈환에 성공했다. 고왕산(355고지) 전투에서 캐나다군은 50여명의 피해를 입은 반면 중공군은 약 200여명의 이상 전사자와 수십 명의 포로를 남기고 퇴각했다
연천군 전곡 부근 방어선 10km 북쪽의 마량산을 3일간 계속되는 공격작전에서 중공군의 완강한 저항을 차례로 격파, 마량산 317고지, 인근 힌지고지, 217고지까지 장악함에 따라 성공적으로 종료된 마량산 전투에서 호주군은 100여명이 전사, 부상, 실종의 피해를 입었으나, 중공군 200여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연천군 북동쪽 율동 인근 고지에서 중공군 1개 사단 규모 병력의 대규모 공격을 대대 병력으로 저지하고, 그 사이에 인접한 부대가 성공적 철수를 위한 엄호작전인 율동전투에서 필리핀군은 5:1의 수적인 열세를 극복하여 50여명의 피해를 입은 반면, 중공군 2명 생포, 500여명 사살의 큰 전과를 거두었다.
중공군의 제5차 대공세를 연천 북방의 장승천 일대를 수적인 열세인 상태에서 급편 방어진지를 구축한 튀르키예군은 유선 통신이 두절되고 중공군에게 포위되는 상황임에도 수적으로 압도적인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고 한탄강 남쪽으로 철수했다. 용맹한 튀르키예군의 위용을 입증하기는 했으나 장승천 전투에서 200여명의 전사, 부상, 실종의 피해를 입었다.
세 번 빼앗기고 세 번 되찾은 땅! 연천을 휩쓸었던 6.25 전쟁의 기억은 여전히 지워지지 상처로 연천지역 곳곳에 남아 있다. 내년 2023년은 6.25전쟁 정전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자유의 의무를 위한 숭고한 헌신을 하신 UN군 참전용사와 참전국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며, 연천지역에서의 UN군 참전용사와 참전국에 대한 감사・기억의 행사 및 교류사업 추진은 다른 지역에서와는 달리 특별한 의미로 와 닿을 수 있고, UN참전국과의 교류는 지역 발전의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