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야 할 5월 그날
기억해야 할 5월 그날
  • 현대일보
  • 승인 2022.05.17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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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보훈지청 보상과 주무관 이푸름

 

2022년도 벌써 5월에 접어들었다. 소위 가정의 달이라고도 하지만 ‘어린이날’, ‘성년의 날’ 등이 있는 걸 보면 1년 열두 달 중 ‘청춘’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달인 듯하다. ‘청춘’은 단지 젊은 시절만이 아니라 어떤 열정을 가졌을 때 ‘청춘’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감히 짐작건대 1980년 5월 빛고을 광주도 ‘오월의 청춘’이 한창인 곳이었을 게다.  

1980년 우리 국민들은 유신체제에서 벗어나 민주주의 사회로 이행할 것을 기대하고 있었고 이른바‘서울의 봄’은 이러한 민주화의 물결이었다. 신군부의 정권 장악에 맞서 학생들은 1980년 봄부터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점차 민주헌법의 제정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크게 일어났는데 5월 14일과 15일 서울지역 대학생들은 계엄령 상황에도 시내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신군부가 중심이 된 정치 상황은 국민의 기대와는 달리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신군부는 5월 17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각 대학에는 휴교령이 내려졌으며 계엄군이 주둔하게 됐다. 신군부세력은 국민들의 저항에 군사적으로 대응하면서 민주인사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와 투옥을 시작했다. 이에 맞서 학생들은 5월 18일 오전, 전남대 정문으로 집결하여 ‘비상계엄 철폐’ 등을 외치며 도심으로 진출했고 시민들은 시민군과 시위대에게 음식물과 생필품을 기꺼이 제공하며 적극적으로 계엄군에 맞섰다. 그러나 계엄군은 시위대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도 진압봉을 휘두르며 무차별 연행했고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이 충정작전을 개시하여 전남도청을 다시 점령함으로써 열흘간의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종결된다. 

이렇게 역사의 한 사건으로서 공식적 기록은 종결됐을지라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끝나지 않았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에도 진상 규명을 위한 투쟁으로 또 5·18 정신을 계승한 민주화 운동으로 일찍 져버린 ‘청춘’들이 있으며 아직도 행방불명자 또는 무명의 열사로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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