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 명예교수 이상철
중앙대 명예교수 이상철
  • 현대일보
  • 승인 2022.04.15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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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인류의 행복

 

1995년 그가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 스토리(Toy Story)는 12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는데 이는 애플이 1980년 공인회사(public)로 전환 했을때 보다 5배나 되는 액수였다.  그리고 1996년 애플의 넥스트(NEXT, 여행용 충전기)인수는 잡스로 하여금 애플로부터 쫓겨난지 11년만에 다시 애플에 돌아오는 계기가 되었다. 잡스는 애플에 다시 돌아옴으로, 40이 된 사람들도 위대한 혁신가(great innovator)가 될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20대에 개인용 컴퓨터의 혁명적 변화를 가능하게 한 잡스는 이제 40대에도 음악플레이어로부터, 레코드 산업, 모바일 전화, 앱스, 태브렛 컴퓨터, 서적, 저널리즘에 이르기까지 혁명적인 변화를 가능케 하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잡스는 혁신적인 물건을 만드는 것과 지속적인 회사(a lasting company)를 만드는 전략을 병행했다. 

잡스가 애플로 복귀한 것은 41세 때인 1997년 1월이었다. 그의 직함은 시간제 고문(part-time advisor)이었다. 맥 컴퓨터는 10년간 진보된 것이 없었다. 그러므로 빌 게이츠의 윈도우가 애플을 따라 잡었다. 그래서 잡스는 보다 낳은  운영체제(OS)를 생각해 냈다. 

애플의 우드워드는 잡스가 무보수의 시간제 고문이 아니라 적어도 대표이사 대행(acting CEO)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잡스는 자신이 설립한 공적 회사인 픽사((PIXAR)의 최고경영자였기 때문에 애플의 최고경영자를  맡으면 한 사람이 동시에 두 개의 공적인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를 맡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고 하면서 처음에는 사양했다. 

그러나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난지 12년 만인 1997년 7월4일 애플의 고문이 아니라 실질적인 책임자가 되었다. 픽사의 회장겸 최고경영자인 잡스는  1997년 9월 16일 애플사의 임시 최고경영자(interim CEO)가 되었고 그해 12월엔 임시로 부터 무기한의 최고경여자 즉, 실질적인 최고경영자(from interim to indefinite CEO)가 되었다. 잡스가 “i”를 사용한 것은 모든 기기가 끊임없이 인터넷(internet)과 통합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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