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힘들고 지치는 이유 중 하나는 나답게 살지 못하고 남의 삶을 흉내 내며 살기 때문이다.
나답지 않을 때의 행동은 매우 부자연스럽다.
가짜이고 위선임이 들킬까봐 늘 남들을 의식해야 하고 경계해야 하니 더 피로하고 더 불안해진다.
불교 경전인‘열반경’에 나오는 맹인모상 이란 말이 있다.
시각장애인이 코끼리 만지기 이야기다.
옛날 인도의 어떤 왕이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손으로 코끼리를 만져 보고 어떤지 말하라고 했다.
그러자 코끼리 상아를 만진 사람은 코끼리가 ‘무같이 생겼다‘고 말했고, 귀를 만진 사람은 ‘곡식을 까불 때 쓰는 키같이 생겼다’고 했다.
그러자 다리를 만진 사람이 나서서 다 틀렸다며 코끼리는 커다란 절 구공이같이 생겼다고 우기자 꼬리를 만진 사람이 ‘굵은 밧줄처럼 생겼다‘고 주장했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너나 할 것 없이 예비후보들의 활동이 여기저기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인물을 놓고 견줘볼 수도 있고 정책을 두고 따따부따도 할 수 있는 건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 국민의 특권이다.
그러나 선거철만 되면 이런저런 부정적인 평가나 불만이 쏟아지고, 지역과 혈연, 지연을 중심으로 갈등을 부추긴다.
특히 작금의 정치권을 보면 짜증이 난다.
대부분 후보들은 자기들의 면모를 정직하게 보여주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깎아낼 수 있을까 몰두하고 있는 것 같다.
온종일 경쟁자를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궁리만 하면서 억지 주장을 생산해 궤변의 화력전을 꾀하고 있다.
이는 관광객의 눈을 가린 채 끌고 가서 코끼리의 특정 부위만을 만지게 한 다음 사이비맹신자로 만들어 보려는 악질이나 다름없다.
자기의 장점은 부풀리고 상대방의 약점은 사정없이 물어뜯고 과장하여 ‘죽일 놈’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종달새가 되고 싶어 했던 개구리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개구리는 ‘개굴개굴’하는 자신의 둔탁한 목소리가 싫었다.
특히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종달새의 노랫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 목소리를 부러워 했다.
어느 날 자신의 목소리에 실망해서 울고 있는 개구리 앞에 천사가 나타나 울고 있는 이유를 물었다.
개구리는 종달새처럼 자신도 멋진 목소리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개구리를 측은하게 여긴 천사가 개구리의 소원을 들어줬다.
개구리는 깜짝 놀랐다.
신기하게도 자기 입에서 종달새의 목소리가 났다.
그렇게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자신이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냇가로 돌아온 개구리는 빨리 자랑하고 싶어 친구들을 모아 놓고 멋지게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야유를 보내며 친구들은 말했다.
아니 개구리 목소리가 저렇게 흉측 할 수가 있다니 하며 모두 떠나버렸다.
개구리의 속성을 잃어버린 개구리는 결국 그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했다.
개구리는 개구리의 목소리로 울어야 한다. 그래야 개구리다운 삶을 살게 된다.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는 자신의 원래 목소리로 고운 말, 격려의 말, 사랑의 말 소리를 내야한다.
사람은 사람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이고 행복의 척도이다.
사람이 멍멍대며 산다면 얼마나 추하겠는가.
책 속에 좋은 말들을 기억의 주머니에 넣어두고, 성경과 불경 말씀을 외우 듯이 귀중하게 사용해야 다른 사람으로부터 섬김을 받는 사람이 된다. 그것이 내 것이고 내 인격이고 내 몸인 것이다.
나는 나답게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 협잡꾼들의 꼬임에 넘어가서 코끼리 만지듯 함부로 만지지 말았으면 한다.
개구리는 개구리처럼, 종달새는 종달새처럼,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나 다운 삶을 살아야한다.
많은 사람들이 돈과 권력과 명예가 삶의 목적인양 살아간다.
하지만 그런 삶에는 행복이 존재하지 않고, 결국에는 내 곁을 모두 떠나고 홀로 불행한 삶만 남게 된다.
산과 들 사방이 벚꽃 향기와 아름다움으로 눈과 코가 호강하는 계절이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상대방의 약점을 사정없이 물어뜯고 과장하여 ‘죽일 놈’ 만들기에 혈안 하기보다 우리와 함께 평범한 일상 속의 바른길에 동행할 때 당신의 삶이 가장 빛나게 보이는 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