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 명예교수 이상철
중앙대 명예교수 이상철
  • 현대일보
  • 승인 2022.04.0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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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인류의 행복

 

잡스는 애플로 복귀한지 1년 만인 1998년부터 2011년까지 오로지 한 가지, 즉, 맥(Macs)으로부터 아이맥스(iMacs)로, 아이맥스로부터 아이튠즈(iTunes)로, 아이튠즈로부터 아이팟(iPods)으로, 아이팟으로부터 아이폰(iPhone)으로 아이폰으로부터 아이패드(iPad)로 일관해 세계 최고의 회사가 되었다.  

잡스는 2003년 최장암 진단을 받았는데,  이는 그가 1997년부터 애플과 픽사 두 회사의 최고경영자로서 너무나 힘들게 일을 했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2004년 7월31일 스탠포드 대학 메디컬센터에서 간 이식수술을 받았다. 잡스는 스탠포드 대학의 2005년 6월 졸업식에 연사로 초대되었다. 

잡스는 연설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이야기(story)를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아무(nobody)도 연설(lecture)에 열광하지 않지만 모두가(everybody) 이야기를 사랑한다고 했다. 잡스는 그래서 이 졸업식 연설에서 세가지 이야기를 했다. 첫째는 그가 리드대학을 중퇴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대학에서 나는 필수과목은 수강하지 않고 내가 원하고 흥미있는 과목만을 택할수 있어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둘째는 그가 애플사에서 퇴출당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30세에 자신이 설립한 애플사에서 해고 되었는데 이것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재충전과 재도약의 기회가 되었다. 셋째는 그가 암에 걸린 이야기를 했다.  잡스는 암으로 죽음을 인지하면서 이제 부터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각오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위해 매진하겠다고 했다. 잡스는 2005년 가을 그가 병가(medical leave)로부터 복귀한 후, 팀 쿡을 애플의 최고운영자(COO)로 내정했다. 잡스는 쿡과 함께 일본 여행을 하면서 이 사실을 알렸다.  

스카리(Sculley)는 잡스를 축출한 후, 부패한 사람들(corrupt)을 고용하고 부패한 가치(corrupt)만을 추구해 애플을 망쳤다. 잡스가 떠난 후 애플은 어떤 새로운 것도 발명하지 못했다. 즉, 잡스가 1982년 출시한 맥 컴퓨터는 1996년까지 거의 개선된 것이 없었다. 1980년대 후반, 16%를 차지했던 애플의 시장 점유율이 1996년에는 4%로 추락했다. 

 잡스는 30세인 1985년 애플로부터 해고당한 후 회사를 시작해 1986년 조지 루카스로부터 픽사(Pixar)를 5백만 달러에 인수했다. 2006년 잡스는 픽사를 디즈니에 74억 달러에 팔고 디즈니의 최대 주주가 되었다. 픽사는 컴퓨터 테크노로지 회사 못지않게 무비 스튜디오(movie studio)이기도 했다. 잡스는 긴장감이 감도는 애플에서 해고당한 후,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으로 픽사에서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기 시작해 1995년 40세가 되면서 크게 번영했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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