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철 교수의 행복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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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일보
  • 승인 2022.03.25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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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인류의 행복

 

애플은 그리고 그해 말, 덜 강력하고 덜 비싼 맥 컴퓨터를 출시했다. 이 컴퓨터가 출시되면서부터 맥 컴퓨터는 세계에서 가장 믿기 어려울 정도의 컴퓨터로 성공했다. 맥 컴퓨터와 리자 컴퓨터는 서로 호환이 안 되었기 때문에 리자 컴퓨터는 출시 후 2년 안에 중단 되었다.  1982년 애플의 연간 매출액은 10억 달러를 돌파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3천2백만 달러에 불과했다. 

애플이 맥 컴퓨터의 놀라운 성공으로 규모가 커지자 잡스는 최고경영자(CEO)를 외부로부터 영입하기로 했다. 잡스는 펩시콜라의 최고경영자인 스카리(Sculley)에 영입을 제의했으나 매우 소극적이었다. 잡스는 스카웃 제의에 미온적인 스카리에게 “당신은 평생을 설탕물(sugared water)만 팔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세계를 변화시킬 기회(a chance to change the world)를 원하는가”라고 했다. 스카리는 결국 잡스의 말에 설득되어 1983년 5월 애플의 최고경영자가 되었다. 1984년 1월 24일 맥 컴퓨터가 출시되던 날, 맥은 “안녕하세요, 나는 매킨토시입니다(Hello, I‘m Macintosh)”라는 말을 하는 최초의 컴퓨터가 탄생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30세는 인생의 획기적인 시기(milestone)이다. 잡스는 1985년 2월 30세의 생일을 기념해, 1천 명의 친지들을 초청해 화려한 생일 파티를 열었다. 

그러나 애플의 공동 설립자였던 우즈와 잡스는 애플을 떠나야 했다. 우즈의 애플 II는 1984년 크리스마스 때만 해도 회사매출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수지맞는 고수익을 내는 상품(cash cow) 역할를 했다. 그러나 우즈는 잡스가 애플 II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애플사를 하직하고 원격조정기기(universal remote control)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회사를 차렸다. 

한편 잡스는 1985년 3월 맥 컴퓨터의 판매가 예산의 10%에 불과한 저조한 실적을 보이자 자신이 영입한 최고경영자인 스카리는 잡스가 맥 컴퓨터의 부서(Mac Division)를 그만 두어야 한다고 했다. 30세가 된 잡스는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애플사를 하직하고 대학교육(higher education)을 위한 컴퓨터 회사를 설립했다. 

잡스는 애플을 떠날 당시 일억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는 애플 주식을 갖고 있었다. 잡스가 회사를 떠나자 애플은 더 이상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회사가 되지 못했다. 회사의 직원은 4,300명에 달했고 회사는 20억 달러의 가치가 있었다. 잡스는 그가 부모의 차고에서 6명으로 애플사를 시작한 것 같이 이번에도 6명의 직원으로 제2의 회사를 창업했기 때문에 당장은 애플의 적수가 될수없어 보였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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