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 명예교수 이상철
중앙대 명예교수 이상철
  • 현대일보
  • 승인 2022.03.04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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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인류의 행복

 

 

3. 애플과 잡스

잡스는 1974년 2월, 리드 대학에서 한 학기만, 등록을 해 정식으로 다니고, 18개월은 청강을 하면서 지낸 후, 다시 로스 알토스(Los Altos)에 있는 부모의 집으로 돌아와 직장을 구하기 시작했다. 잡스는 비디오 게임 제조사인 아타리(Atari)에서 기술자(technician)로 취직을 하게 되었는데, 취직을 하게 된 경위는 이러했다. 잡스는 어느날 아타리 회사의 로비에 샌들(sandals)을 신고 나타나 무조건 일자리(job)를 주지 않으면 한 발도 물러서지 않겠다고 했다. 이에 부하 직원이 윗 사람에게 한 히피(hippi)가 복도에 나타나 ”우리가 그를 고용할 때까지  한발도 물러서지 않겠다“고 하는데 경찰을 부를가요 아니면 안으로 들여 보낼가요라고 보고했다. 이렇게 해서 잡스는 처음으로 직업을 갖게 되었다. 

잡스는 아타리에서 일하는 50명의 기술자 가운데 하나로 채용되었다. 그는 시간당 5달러를 받기로 하고 채용되었다. 잡스는 매우 지적이고 열심이고 기술(tech)에 열정적이었다. 잡스의 아타리에서 근무한 경험은 그의 디자인과 비즈니스(장사)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잡스는 기술(engineering)뿐 아니라 비즈니스에도 관심이 많았다. 이 무렵 잡스는 동료인 우즈(Wozniak)를 만났다. 우즈는 잡스보다 더 나은 기술자였고 나이는 5살 연상이었다. 우주는 잡스가 자기를 도와(동업을 해) 돈이 생기면 분배하자고 제의를 했을 때 매우 기뻐했다. 우즈는 마법사(wizard)와도 같이 작고 깔끔한 발명을 해서 남에게 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행복 했다. 잡스는 그러나 이런 발명을 사용자 친화적(user-friendly)으로 만드는데 귀재였다. 말하자면 이런 발명을 한데 모아 상품으로 팔아 돈을 버는데 재능이 특출했다. 

잡스와 우즈는 자본금 1,300달러로 컴퓨터 회사를 설립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잡스는 회사 명칭에 관해 우즈와 의론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회사 개업 하루 전에야 ”애플(사과)“로 정했다. 그 과정은 이러했다. 잡스는 주말 애플농장에서 일하다가 귀가 도중 회사 이름을 ”애플“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떠 올랐다. 애플은 누구나 ”재미있고, 기백이 있고, 친근하게(fun, spirited, not intimidating)“ 느낀다는 것이다. 그리고 애플은 아타리(잡스가 일하던)보다 전화번호 책에 먼저 기재되어 더 만족해했다. 애플은 영리한 선택(smart choice)임이 입증되었다. 이 한 단어는 사람들에게 즉각적으로 친근감(friendliness)과 간결함(simplicity)을 느끼게 했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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