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철 교수의 건강칼럼
이상철 교수의 건강칼럼
  • 현대일보
  • 승인 2021.10.22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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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 철
중앙대 명예교수
행복과 믿음, 희망, 사랑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1905년 러일전쟁을 중재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워싱턴이나 제퍼슨과 같이 건국 초기의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전시나 경제적 위기가 아닌 평화롭고 좋은 시기에(in good times) 위대한 대통령이 된 유일한 인물이다. 링컨과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조카인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미국 역사에서 가장 큰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위대한 대통령이 되있다. 이결과 가장 위대한 대통령 순위에서 링컨이 1위, 워싱턴이 2위,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3위,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4위, 제퍼슨이 5위를 차지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하버드 대학 2학년 때 그의 5촌 아저씨인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대통령에 당선 되었다. 그리고 그후 2년반 후에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조카 딸(niece)인 엘리노 루스벨트(Eleanor Roosevelt)와 결혼을 했다. 그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1907년 뉴욕에서 변호사가 되었다. 1920년 제임스 콕스의 런닝 메이트로 부통령에 출마했으나 하딩과 쿠리지에 패배했다. 그는 39세인 1921년 척추 성 소아마비(polio)로 두 다리를 쓸 수 없이  평생 불구가 되어 휠체어(wheelchair)신세를 지게 되었다. 

척추성 소아마비로 불구가 된 프랭클린은 1921년부터 1928년까지 뉴욕에 있는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근무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재활 치료를 받았다. 그는 1928년 뉴욕 주지사에 두 번(1929-1933)이나 당선되어 주지사를 역임 하던 중 1932년 대통령에 당선 되었다. 그는 1933년 러시아를 승인했다.

프랭클린은 미국의 대통령 중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네 번이나 당선되어 12년 간이나 집권했다. 그러나 그는 1944년 4선에 당선되어 취임한지 3개월(93일)만에 병사(1945.4.22)했다. 그러나 지금은 1951년 34대인 아이젠하워 대통령(1953-1961)때 제정 된 수정헌법 22조에 의해 2선 이상 출마할 수 없다.

프랭클린은 1942년 백악관으로부터 118 킬로미터(300리)가량 떨어진 메릴랜드 주 산장에 대통령 별장을 마련했다. 이 별장의 이름이 캠프 데이비드로 불리게 된 것은 1953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손자 이름인 데이비드 이를을 딴 것이다. 배악관 면적은 18에이커(21,000평)이지만, 캠프 데이븨드 면적은 125에이커(150,000평)에 달한다.  

프랭클린은 1933년과 1934년 그리고 1941년 3번에 걸쳐 타임지에 의해 “그해의 인물(person of the year)로 선정되었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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