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철 교수의 행복메시지
이상철 교수의 행복메시지
  • 현대일보
  • 승인 2021.07.30 14:44
  • icon 조회수 2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행복과 자연사랑
이 상 철
중앙대 명예교수

 

같은 해 4월, 소로는 멘토르인 에머슨 집에 입주해 잡역부handyman)로 일을 했다. 소로는 1843년 여름, 뉴욕 스태튼 아일랜드(Staten Island)에 있는 에머슨 형의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뉴욕에서 7개월을 보냈다. 그는 뉴욕의 맨해튼이 1천배나 더 저속하다고(a thousand times meaner) 협오 하면서, 이곳을 피했고, 그 대신 스태튼 아일랜드에서 “콩코드의 겨울산책”이란 수필을 완성하는데 주력했다. 그는 스태튼 아일랜드로부터 돌아온 후 더 이상 가르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에머슨(1803-1882)은 1821년에 하버드를 졸업 했고, 소로(1817-1862)는 1837년에 하버드를 졸업 했다. 에머슨은 수필가, 철학자, 시인, 연설가였다. 에머슨은 1,500회의 대중강연을 한 것으로 유명했다.  에머슨은 소로를 25(1837-1862)년간 이웃으로, 작가로 사상가로 그리고 자신의 집 거주자로 알고 지냈다고 했다. 

소로는 단순하고 검소하게 사는 것(living simply and modestly)으로 만족했다. 왜냐하면 그는 자유란 보다 복잡한 생활의 올가미에 얽매이지 않고 사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소로는 일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비정규직인 파트타임(part-time)제로 일을 했다. 그가 파트타임으로 한 일은 연필제조(pencil making), 목공, 석공(masonry), 측량, 원예 등 다양했다.

소로는 전적으로 노동을 하면서 살았다. 그는 1년에 6주 만 일하면 연간 생계에 필요한 모든 비용(all the expenses of living)을 벌수 있었다. 소로는 나머지 시간인  겨울의 모든 시간과 대부분의 여름 시간을 자유롭게 공부를 하고 글을 쓰는데 보냈다. 소로는 일용직 노동(a day-labor)이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직업이라고 하면서, 생계를 위한 일은 일년에 30, 40일만 하면 된다고 했다.  

소로는 “인생을 단순하고 현명하게 살면(simply & wisely)” 인생은 고난(hardship)이 아니라 기분전환(pastime)이라고 했다. 이런 삶을 살기위해 그는 자유롭고 일에 얽매이지 않고(uncom mitted)살도록 노력했다. 그는 모든 기억할만한 사건은 아침시간(morning time)이나 아침시간과 같은 분위기(morning atmos phere)에서 일어난다고 했다. 소로는 하버드 졸업 10주년 기념(1837-47) 설문 조사에서 자신의 직업을 선생, 가정교사, 측량사, 정원사, 농부, 페인터, 목수, 석공, 일일 노동자(a day laborer), 연필 제조자, 그래스 페이퍼 메이커(유리가루 먹인 사지), 작가, 시인이라고 했다. 

소로는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자연에서 걷기, 독서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글쓰기에 보냈다. 글쓰기는 생계의 수단이 되지는 못했다. 소로는 오래동안 부수가 그리 많지 않은 잡지(journal)의 기자(repo rter)로 많은 기고를 했지만  대부분의 기고문이 기재되지 못했다고 했다. 소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를 계속했다. 

    <다음주에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