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일의 사랑
행복과 일의 사랑
  • 현대일보
  • 승인 2021.07.23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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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 철
중앙대 명예교수

 

소로는 자연사랑과 깊은 관련이 있다. 소로는 자연주의 철학자이고, 자연 작가(nature writer), 자연 사가이고, 수필가이며 사상가이다. 소로는 자연은 거의 모든 것을 치유해 준다고 했고, 자연은 위대한 스승(a great teacher)이라고 했다.   

소로는 1817년 미국 메서추세츠 콩코드에서 출생했고 하버드 대학을 졸업(1833-37)했다. 하버드에서 그의 성적은 보통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어와 라틴어, 불어, 이태리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을 공부했다. 소로는 언어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이렇게 말했다. 만일 오래된 고전을 원어로 읽지 않는다면 인류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매우 불완전한 지식을 갖게 될 것이다.  한 예로 호메로스가 쓴 가장 오래된 서사시인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와 같은 고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어인 그리스어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소로는 언어뿐 아니라,  지리학, 광물학, 해부학과 자연의 역사(natural history)도 공부를 했다. 

소로는 하버드를 졸업한 1837년 8월22일부터 자신의 멘토르가 된  랄프 에머슨의 권유로 매일 일기(journal)를 쓰기 시작해 1862년 44세로 사망하기 직전까지 일기를 썼다. 그가 쓴 일기의 양은 2백만 단어에 달했고, 이는 그가 사망한지 40년 후인 1906년 20권의 책으로 출간 되었다. 

소로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7년이 지난 1845년 28세가 되기까지 별다르게 한 일이 없었다. 당시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면 성직자나 변호사가 되거나, 사업가가 되거나 아니면 적어도 선생이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 대신 그는 부모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소로는 하버드를 졸업한 후 자신이 다니던 공립학교(public school)의 선생이 되었다. 1837년에 불어 닥친 경제공황에서도 연봉 500달러의 선생 직은 상당한 대우였다. 그러나 그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너무 자유 분망하고 소음수준이 심하니 체벌을 하라는 학교당국의 지시가 있었다. 소로는 학교당국의 부당한 지시에 반대 해 2주 만에 선생 직을 그만 두었다.        

그후 마땅한 직업이 없자, 부모 집에서 부친이 하는 연필 만드는 일(pencil-making)을 도왔다. 일년 후, 소로는 동생인 존과 사설학교(private school)를 세웠다. 이 학교의 방침은 체벌 없이 스스로 공부하게  하는 것이었다. 소로는 그리고 자신만의 수업방식으로 학생들을 지도했다. 학생들은 자연 속에서 새와 꽃 벌레들을 직접 만지며 공부를 했다. 소로의 교육방식은 그후 생태학습이란 교육방법으로 발전했다. 이 학교는 동생 존의 갑작스런 건강악화로 1841년 4월 문을 닫았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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