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마음
어버이 마음
  • 고중오
  • 승인 2021.05.10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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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어머니가 물었다. 그래 낮엔 어딜 갔다 온 거유, 가긴 어딜가 그냥 바람이나 쐬고 왔지, 아버지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래 내일은 무얼 할꺼유 하긴 무얼해 고추모나 심어야지~

내일이 무슨 날인지나 아시우, 날은 무신 날 맨날 그날이 그날이지~ 어버이날이라고 옆집 자식들은 벌써 왔습디다. 아버님은 아무 말 없이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당겼다. 다른 집 자식들은 철되고 때 되면 다들 찾아오는데, 우리 집 자식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원~ 어머니는 긴 한숨을 몰아쉬며 푸념을 하셨지요. 오지도 않는 자식놈들 얘긴 왜 해, 왜 하긴 하도 서운해서 그러지, 서운하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니유~어험~ 아버지는 할 말이 없으니 헛기침만 하신다. 세상일을 모두 우리 자식들만 하는지~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자식 잘못 기른 내 죄지 내 죄야~ 어머니는 밥상을 치우시며 푸념 아닌 푸념을 했지요.어험~ 안오는 자식 기다리면 뭘 해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지.아버지는 어머님의 푸념이 듣기 싫은지 휭하니 밖으로 나가셨다.어버이날이 밝았다.조용하던 마을에 아침부터 이집 저집 승용차가 들락거린다.아니 이 양반이 아침밥도 안 드시고 어딜 가셨나 고추모를 심겠다더니 비닐하우스에 고추모도 안 뽑고. 어머니는 이곳저곳 아버지를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혹시 광에서 무얼하고 계시나 광문을 열고 들어갔다.거기엔 바리바리 싸 놓은 낯 설은 봇다리가 2개 있었다.

봇다리를 풀어보니 참기름 한 병에 고추가루 1봉지, 또 엄나무 껍질이 가득 담겨 있었다.

큰아들이 늘 관절염 신경통에 고생하는걸 알고 준비해 두었던 것이다.또 다른 봇다리를 풀자 거기에도 참기름 한병에 고추가루 1봉지, 민들래 뿌리가 가득 담겨 있었지요,

작은 아들이 늘 간이 안 좋아 고생하는 걸 알고 미리 준비해 두셨나 보다.어머니는 그걸 보시고 눈시울이 붉어진다.언제 이렇게 준비해 두셨는지, 엄나무 껍질을 구하려면 높은 산엘 가야 하는데 언제 높은 산을 다녀왔는지, 요즘엔 민들레도 구하기 힘들어 몇 칠을 캐야 저 만치 되는데 어젠 하루 종일 안 보이시더니, 읍내에 나가 참기름을 짜 왔던 것이었다.자식 놈들이 이 마음을 알려는지, 어머니는 천천히 발을 옮겼다.

동네 어귀 장승백이에 아버지가 홀로 앉아 있었다.

구부러진 허리에 초췌한 모습으로 저 멀리 동네 입구만 바라보고 계셨다.어머니는 아버지의 마음을 잘 알기에 시치미를 뚝 떼고, 아니 여기서 뭘 하시우 고추 모는 안 뽑구 청승 떨지 말구 어서 갑시다.

작년에도 안오던 자식놈들이 금년이라구 오겠수, 어머니는 손을 잡고 이끌자, 그제 서야 아버지는 못 이기는 척 일어났지요.오늘 날씨 왜 이리 좋은 기여, 어서 가서 아침 먹고 고추모나 심읍시다.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따라 오면서도 자꾸 동네어귀만 처다 보았다.없는 자식복이 어디서 갑자기 생긴다우 그냥 없는 듯 잊고 삽시다.험험~ 헛기침을 하며 따라오는 아버지는 애처로워 보였다.

집에 돌아와 아들 오면 잡아주려고 애지중지 길러왔던 씨암탉을 보고 오늘은 어버이 날이니 우리 둘이 씨암탉이나 잡아먹읍시다.

까짓거 아끼면 무얼하겠수 자식 복두 없는데 아침 밥상을 차리면서 오늘은 고추모고 뭐고 그냥 하루 편히 쉽시다.

괜히 마음도 안 좋은데 억지로 일하다 병나면 큰일 아니우 다른 집들은 아들딸들이 와서 좋은 음식점에 외식이다 뭐다 하는데 우린 씨암닭 잡아 술이나 한잔 합시다. 험험~ 그때였어요.아침상을 마주하고 한술 뜨려 하는데 아브이 어므이~

하면서 재너머 막내딸과 사위가 들이 닥쳤지요.아니 니가 어떻게, 어므이 아브이 오늘 어브이날 이라 왔어. 아브이 좋아하는 쑥 버므리떡 해가지고 왔어 그러면서 아직 따끈따끈한 쑥 버므리 떡을 내 놓는 것이 아닌가~아니 이 아침에 어떻게 이 떡을 만들었니.이보 게 박 서방 어떻게 된 건가 네 장모님 저 사람이 어제부터 난리를 쳤어요.

장인어른께서 쑥버므리떡 좋아하신다고 쑥 뜯으러 가자고 난리를 치고, 또 밤새 울거 내고 새벽부터 만들었어요. 그랬구나 그런데 왜 이렇게 땀을 흘리고 왔어 천천히 오지, 저 사람이 쑥 버므리떡은 따끈할 때 먹어야 맛있다고 식기전에 아버님께 드려야 한다고 뛰다시피 해서 가지고 왔어유~ 에이구 몸도 성치않은 자식인데 언제나 어머니 마음 한구석에 아픔으로 자리했던 딸이었기에 그저 두 내 외 잘 살기만을 바라는 마음이었지요.

어느 사이 어머님의 눈가엔 눈물이 배어 나왔다.참 아브이 어므이 이거 하면서 카네이션 두송이를 꺼내어 내미는 거였지요.저이가 어제 장터에 가서 사왔어 이쁘지 히히, 내가 달아 드릴께 하면서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 드렸다.오래오래 살아야 돼 알았지, 그래 알았다 오래 살으마 너희들도 행복하게 잘 살아라 박서방 정말 고맙네, 아니에요 장모님 두 분 정말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유 그려그려 정말 고맙네,아버님과 어머님은 쑥 버므리떡을 입에 넣으며 목젖이 울컥하는 것을 느꼈지요.눈가엔 눈시울이 붉어 졌지만 애써 참으며 그래 참 맛있구나 이렇게 맛있는 쑥떡은 처음 먹어 보는구나~ 당신도 그렇지요? " " 흠흠 으응.아버님은 목이 메어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셨지요.참 술 술~ 사위가 잊었다는 듯 보따리에서 술병을 꺼냈어요.평생 홀아비로 늙어갈 몸인데, 저렇게 이쁜 색시를 주셔서 넘 고마워 유, 무슨 소린가 몸도 성치 않는 자식을 받아 준 자네가 고맙지, 아녀유 저한테는 너무 과분한 색시구먼 유, 그려 그려 앞으로도 못난 자식 잘 부탁하네, 장인장모 어르신 오래오래 사세유~ 아버님은 눈시울이 뜨거워 더 이상 앉아있지 못하고 슬며시 일어나 나가셨지요.몸이 불편한 자식이라 불쌍하게만 여겼지, 아들처럼 공부도 안 시키고 결혼식도 안 올리고, 그냥 시집을 보낸 딸자식이었는데 그저 시집보냈으니 있는 듯 없는 듯 신경 안쓰던 그 자식이 어버이 날이라고 이렇게 불쑥 찾아 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지요.

더욱이 내가 좋아하는 쑥 버므리떡을 밤을 새워가며 해가지고 올 줄이야 내 평생 이렇게 맛있는 떡을 먹어 본적이 있었던가, 무엇이든 아들 형제만 주려고 생각했지, 딸은 언제나 안중에 없었지요.먼 아들보다 가까운 딸자식이 소중한 것을 그때서야 알았어요.

그러면서 가슴 저 깊은 곳이 아려왔지요.

정말 딸자식이 고마웠어요.아니 많이 미안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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