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의 초석 4·19혁명
자유민주주의의 초석 4·19혁명
  • 현대일보
  • 승인 2021.04.13 17: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 인 우
서울지방보훈청
보상과 주무관

 

인간의 역사란 무엇인가. 세계사가 지금까지 수고를 들여 해온 일이란 무엇이던가. 그것은 인간 감성의 생산, 다시 말해 오감의 형성이었다. 인간이 뭔가 발전했다면 그것은 같은 것을 달리 보고 달리 느끼는 법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이룩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도 바로 그러한 역사를 찾아볼 수 있다. 4.19혁명 전후로 우리는 진정한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이룩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수반되었는지 바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4.19항쟁은 왜 일어났을까? 그것은 바로 이승만 대통령의 지나친 권력 탐욕에서 비롯되었다. 1952년 발췌개헌, 1954년 사사오입개헌, 1950년대 이뤄진 일련의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에서 발생한 관건선거 및 부정선거의 역사가 그 탐욕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당시 선거에서는 보통, 평등, 직접, 비밀이라는 선거의 기본원칙 조차 말살되었으며 그것이 극에 달한 1960년 총선거에는 유권자 조작, 사전투표, 야당 인사의 살상, 공개투표, 부정개표 등 온갖 비리로 오늘날 역사는 이를 1960년 3·15총선거가 아닌 3·15부정선거라 명명한다.

당시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를 바라는 일반 시민 및 학생들의 열망은 이러한 부정선거를 용납하지 않았다. 야당 정·부통령 후보의 유세를 방해하기 위한 일요일 등교령에 항거하여 일어난 대구 2·28민주운동을 시작으로, 대전 3·8민주의거, 마산 3·15의거로 이어지는 반독재 항거가 일어난 것이다. 특히 4월 19일에는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당시 정권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발포를 통한 진압을 강행하여 186명의 사망과 6,026명의 부상이 발생했는데, 이는 거대한 반향을 일으켰다.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달은 정권은 부통령과 자유당 총재를 사임시키고 연행한 시위자들을 풀어줬지만, 독재의 종식을 원하는 국민의 뜻은 확고했다. 교수단의 시국 선언에 더해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미국의 지지 철회는 결정타로 작용하여,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를 선언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전 국민의 염원이 마침내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4·19혁명은 우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국민이 부정독재에 맞서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었고 혁명의 정신은 이후 대한민국 민주화 정신의 밑바탕이 되었다. 4·19혁명에서 시작된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진정한 열망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통해 달성된 민주화 운동의 효시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은 고통과 대화할 때 가치가 드러난다. 우리가 흔히 누리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또한 그렇다.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가 확립되기까지 기나긴 역사 속에서 이름 모르게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순국선열 및 4.19혁명 국가유공자들의 고통 속에서 피어난 아름답고 소중한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감사함과 소중함을 4.19혁명 61주년을 맞아 다시 한번 진정한 가치를 느끼는 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