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죄 적용 범위의 축소
배임죄 적용 범위의 축소
  • 현대일보
  • 승인 2021.03.08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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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정 은
인천서부경찰서
수사과 경장

 

형법 제355조 제2항의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 적용되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죄이다. 사기죄, 횡령죄와 함께 재산과 관련된 타인과의 거래 관계에서 자주 논의되는 죄이다.

 배임죄의 성립요건 중 법조문에도 잘 나와있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는 요건이 비교적 최근에는 아주 좁게 해석되어, 즉 그 행위자가 ‘타인의 사무처리자’가 아닌 경우가 더러 발생하게 되어, 이전에는 법원에서 배임죄로 인정되던 행위가 무죄 판결을 받고 있다.

 동산의 매매계약 체결 및 중도금까지 수령 후 제3자에게 양도한 행위에서도 이 매도인은 타인의 사무처리자가 아니게 된지는 꽤 시간이 흘렀으나(대법원 2008도10479 판결), 최근에는 동산을 양도담보로 제공한 자가 양도담보권자의 허락없이 임의로 제3자에게 그 동산을 매각했을 때(대법원 2019도9756 판결), 또 자동차와 같은 저당권 설정이 가능한 동산에 저당권을 설정한 뒤에 제3자에게 양도했을 때(대법원 2020도6258)에도 이 행위자가 타인의 사무처리자가 아니어서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게 되었다. 부동산 거래에서도 근저당권 설정을 약정한 소유자가 타인의 사무처리자가 아니기 때문에 약정을 위반해도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2019도14340 판결).

 권리 설정 이후의 채무 불이행은 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할 여지가 있겠으나, 다른 경우는 어떠한가. 배임죄로 보호받을 수 있는 거래는 이제 부동산 매매 계약, 채권 양도 계약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마저도 지금까지의 대법원 판례 취지에 따르면 언제든지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게 될 수 있다. 

 이런 경향으로 인해 상대방의 신뢰를 저버리며 계약을 위반한 자는 형사 처벌을 받지 않게 되고, 따라서 계약 상대방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매매 계약이든, 저당권 설정 계약이든, 상대방의 계약 의무 이행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어야 계약이 체결될텐데, 그렇지 못해 체결 가능성도 낮아지게 될 것이다. 혹자는 배임죄의 적용범위를 축소함으로써 국가의 과도한 개입을 차단해 사적 자치의 침해를 방지할 수 있다는데, 이런 경향이 계속된다면, 종국에 가서는 배임죄 성립이 불가능한 거래는 그 진행이 어려워져 사회 전체 규모에서는 사적 자치가 오히려 위축되는 결과를 낳게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견에 동의하기 어렵다. 대법원의 최근 판례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공론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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