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철교수의 건강과 행복 메시지
이상철교수의 건강과 행복 메시지
  • 현대일보
  • 승인 2020.08.09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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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 철

중앙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학부
명예교수

 

그러나 링컨의 장남인 로버트의 생애는 화려했다. 그는 1864년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 입대하려고 했다. 어머니의 반대로 군에 입대하지 못하자, 하버드 대학을 1년 더 다닌 후 법을 공부했다. 그는 그 후 변호사를 거쳐 20대 대통령인 가필드(1881)와 21대 아서 대통령(1881-85) 당시 전쟁쟁관(1881-85)을 지냈고 23대 대통령인 벤자민 해리슨(1889-93)때는 주영공사를 역임했다. 로버트 링컨은 아버지 링컨이 포드극장에서 피살될 때는 현장에 있지 않아서 이를 목격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가필드 대통령이 1881년 피살 될 때와 1901년 매킨리 대통령이 피살될 때는 이 두 현장을 모두 목격했다. 

23년의 결혼기간 동안 정치에 관한 한 성격이 맞아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 예로 메리는 1850년 링컨이 그의 정치적인 기반과는 거리가 먼 오레곤 주지사 발령을 받고 수락하기로 거의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그러나 메리는 “당신이 오레곤 주지사로 가면 당신은 대통령이 될 기회를 노칠 것이라고 하면서” 극력 반대를 해 수락하지 않았다. 메리는 “링컨, 당신은 언젠가 미국의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링컨은 1846년 연방 하원 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는 2년의 임기를 마친 후 재선 출마를 하지 않았다. 그는 1855년 연방 상원 의원에 출마했으나 민주당의 더그러스에 패했고, 4년 후인 1859년 다시 상원의원에 출마했으나 또 다시 더그러스에 패했다. 그러나 링컨은 다음 해인 1860년 대통령에 출마해 당선 되었다. 

그러나 노예를 반대한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합중국(Union)은 분열해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래서 링컨 대통령 당선자(President-elect)는 신변의 위험을 느껴, 수도인 워싱턴에 시간을 속여(under a clock of stealth) 몰래 도착했다. 링컨은 1861년 3월4일 미국의 16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링컨의 백악관 시절 하루의 일과를 보면 다음과 같다. 그는 아침 7시에 일어나 서재에 앉아 성경을 읽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이는 그가 어려서부터 지켜온 습관이었다. 그는 하루에 300통의 편지를 시민들로부터 받았는데 5,6톻 정도 읽었다. 그는 8시에 아침 식사를 했고 9시부터 집무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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