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형 마을살리기 프로젝트 / 조리읍 편
파주형 마을살리기 프로젝트 / 조리읍 편
  • 이종덕
  • 승인 2020.05.25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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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일천 숨길’로 근대문화마을 조성
봉일천 숨길 프로젝트 추진…3단계 나눠 마을 살리기에 나설 계획
3.1운동기념비, 대원교회 등 봉일천 시장 중심 역사 자원 8곳 밀집
공릉장터국밥 재현, 봉일천주재소 복원…근대문화전시관 활용 논의
파주시 조리읍은 행정명인 ‘조리’보다 조리읍의 중심구역인 ‘봉일천’이란 명칭이 익숙한 지역이다. 조리읍은 파주의 관문이라 할 만큼 서울, 고양시와 인접해있는데 통일로를 따라 파주를 진입하면 파주삼릉, 하니랜드, 장곡리 저수지를 만날 수 있다.
봉일천 시내로 진입하기 전 미군기지가 있었던 캠프하우즈를 만날 수 있는데 이곳의 개발계획이 완성되면 대단지 아파트가 조성돼 지금보다 2배 이상 인구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봉일천 중심구역인 1, 6, 7리는 슬럼화가 예상된다.
이에 조리읍 마을공동체협의회는 봉일천 1, 6, 7리 일대를 근대문화마을로 조성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마을 살리기를 시작했다. 조리읍의 지역 주민, 마을이장, 전통시장 상인회, 주민자치위원회가 조리읍 마을공동체협의회를 구성하며 근대문화마을 ‘봉일천 숨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조리읍의 마을살리기를 살펴봤다.
◇ 조리읍 마을공동체협의회, ‘봉일천 숨길’ 프로젝트 구상
조리읍 마을공동체협의회는 지난 2019년 12월 봉일천 전통시장 구역을 중심으로 산재한 유ㆍ무형의 근대문화자원을 스토리텔링 콘텐츠로 개발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자 구성됐다. 봉일천 전통시장은 지난 2018년 11월 전통시장으로 인증 받았고 현재 136개 점포가 입점해 있다.
김훈민 조리읍 마을공동체협의회장은 지난 2016년 마을살리기 최고지도자 과정에 참여해 조리읍의 역사ㆍ문화 자원을 찾게 됐고 주민들을 설득해 조리읍의 마을 스토리를 토대로 역사적 가치를 되살려 마을 살리기에 나섰다.
조리읍의 ‘봉일천 숨길’은 ‘역사에도 숨길을 불어넣어야 썩지 않는다’는 의미로 붙여진 프로젝트명이다. ‘봉일천 숨길’ 대상지는 봉일천주재소, 민영달불망비, 3.1운동기념비, 송암농장 터, 봉일천주막, 1사단CP(봉일천초등학교), 대원교회, 봉일천시장(공릉시장) 등 봉일천 시장을 중심으로 밀집된 역사 자원 총 8곳이다. 장소마다 각기 다른 사연을 품고 있는 조리읍의 역사ㆍ문화 자원을 소개한다.
◇ 봉일천 숨길 역사 자원 8곳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나? -광복 이전
봉일천 숨길에는 1894년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민영달불망비’가 있다. 조리읍 행정복지센터 앞 오른쪽 길가에 자리한 ‘민영달불망비’는 조선 말기 문신이자 명성황후의 종형제로 내무대신을 지낸 민영달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으며 지역 민원을 처리해준 데 대한 감사 마음을 담고 있다. 민영달은 당대의 정객인 이완용, 이윤용을 조종할 정도로 수완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1986년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독립유공자로 지명됐다.
조리읍의 봉일천주재소는 공릉장터에서 3천 명이 만세시위를 하던 중 일본순사의 총탄에 6명이 순국한 역사적 장소다. 봉일천 장날의 만세사건은 심상각의 주도하에 김웅권, 권중환, 심의봉, 이근영, 이종구, 유영 등이 주도해 광탄면 발랑리에 본부를 두고 파주는 물론 고양시 일부까지 대규모 시위를 전개하기로 한 것이다.
1919년 3월 28일 거사 당일 광탄면 등지에서 2천여 명의 군중이 봉일천시장으로 몰려와 그곳에 있던 1천여 명의 군중과 합세해 3천여 명이 격렬한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이 와중에 시위 군중들이 봉일천 헌병 주재소를 공격하자 일본 헌병들이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발포해 6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당했다. 이날 시위는 파주에서 전개됐던 3.1운동 중 가장 대규모적이고 치열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파주지역 최대 규모의 3.1만세시위가 펼쳐졌던 조리읍 봉일천리에 1978년 3월 1일 3.1운동 기념비가 건립됐다. 3단으로 된 대석 위에 비신을 올렸으며 전면에 ‘파주 3.1운동 기념비’라 새겨져 있고 음기로 비문의 글이 적혀 있다. 기념비문 뒷부분에는 파주 3.1운동을 주도한 심상각 선생을 비롯한 19인의 명단과 당시 만세를 부르다 희생된 김남산 선생 등 8인의 명단, 옥고를 당한 22명의 명단 등 파주지역 3.1운동 관련 인물들의 명단이 기록돼 있다.
광복 이전을 기준으로 조리읍 봉일천에 위치한 마지막 역사 명소는 ‘송암농장 터’이다. 봉일천 4리에 위치한 송암농장은 1930년대 초 조병학 씨가 조리읍 봉일천4리의 전답 약 13만 평의 땅에 설립한 곳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경지정리 작업을 시행한 곳이기도 하다. 그 당시 ‘경지정리’는 혁신적인 과학 영농이었는데 경지정리에 따른 소출 증가로 재산도 많이 불어났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일본 학생들이 경지정리 기법을 배우기 위해 송암농장으로 견학을 왔다고 전해진다.
◇ 봉일천 숨길 역사 자원 8곳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나? -광복 이후
조리읍 대원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원교회는 1901년 설립돼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1949년 대원교회 소속 주일학교 학생 36명이 봉일천초등학교에 다녔는데 우상숭배라고 해 국기배례를 거부하다 퇴학 처분을 받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의 주재로 국기배례를 주목으로 바꾸는 국민의례가 결정돼 학생들이 다시 복교됐다고 한다. 대원교회는 국기에 대한 경례 방식을 신설하게 된 계기인 곳이다.
봉일천은 6.25발발 직후 일선에서 밀려 내려오던 1사단이 1950년 6월 28일 봉일천국민학교에 1사단CP를 차리고 마지막 저항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국군은 수일간 적과 맞서 끈질기게 싸웠지만 더 이상 항전이 불가함을 알고 후퇴를 결행, 경기 시흥에서 합치거나 지리산에 들어가 게릴라가 되자며 철수한 곳이 바로 봉일천이다. 1사단CP는 1사단이 6.25전쟁 역사상 최초의 반격 작전을 짰던 곳으로 역사적 의미가 있다.
마지막 근대문화자원은 한국 현대시의 주류를 완성했다고 평가받는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봉일천주막’ 터다. 조지훈의 ‘봉일천주막에서’란 작품에는 ‘여기는 파주땅 봉일천리, 주막집 툇마루에 앉아 술을 마신다’라는 구절이 있다. 현재는 터만 남아있지만 조리읍 마을공동체협의회는 조지훈 시인 작품을 토대로 봉일천주막을 복원해 마을 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 파주를 대표할 근대문화마을 ‘봉일천 숨길’ 추진 계획
조리읍 마을공동체협의회는 ‘봉일천 숨길’ 프로젝트를 1단계(단기), 2단계(중기), 3단계(장기)로 나눠 마을 살리기에 나설 계획이다. 우선 1단계 단기계획으로 공동체 활동과 근대문화유산을 홍보하기 위해 마을소식지를 발행할 예정이다. 마을소식지는 주민자치위원회에서 2019 파주시 주민자치 우수사례 대상을 수상하며 받은 상금 500만 원으로 발행할 예정이며 ‘봉일천 숨길’을 알리는 첫걸음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조리읍 마을공동체협의회는 ‘봉일천 숨길’ 프로젝트 2단계 중기단계로 오는 11월 근대문화거리축제를 개최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타 지역과 차별화된 거리축제를 기획하기 위해 근대문화 유ㆍ무형 역사자료를 이용한 축제 콘텐츠를 개발할 예정이다. 주민자치위원회와 전통시장 상인회, 지역공동체가 협업해 공릉장터 재현, 근대의상 체험, 봉일천 숨길 탐방 등을 선보일 계획으로 스태프와 운영진이 일본헌병, 독립군, 학생 등의 의상을 입고 축제를 진행할 예정이다.
봉일천 숨길이 조성된 후 마지막 3단계 장기계획으로는 조지훈 시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봉일천 주막을 복원해 공릉장터국밥을 재현하고, 봉일천주재소를 복원해 근대문화전시관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봉일천 숨길’ 프로젝트의 주축이 될 봉일천시장(공릉장)은 중부지방 3대 시장 중 하나였던 곳이다. 19세기 초 간행된 ‘만기요람’에는 당시 8개도 327개 군에 개설된 1천31개의 장시와 경기도의 장시 102개를 기록하며 전국에서 규모가 큰 15개의 장시를 설명한다. 경기도는 광주의 사평장ㆍ송파장, 안성의 읍내장, 파주의 공릉장(봉일천장) 등이 전국 최대의 장으로 거론됐는데 파주의 봉일천시장은 조정의 주도하에 개설된 대장시다.
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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